책이름 : 고추잠자리
지은이 : 이하석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투명한 속」(1980년, 문학과지성사) - 12편, 「김씨의 옆얼굴」(1984년, 문학과지성사) - 17편, 「우리 낯선 사람들」(1989년, 세계사) - 18편, 「측백나무 울타리」(1992년, 문학과지성사) - 16편, 「금요일엔 먼데를 본다」(1996년, 문학과지성사) - 18편. 이 시선집은 5편의 시집에서 선한 81시편과 시인의 글 '수계당 산고(修溪堂 散稿)'를 엮었다. 녹색평론 편집장이었던 변홍철이 불현 듯 시집 「어린왕자, 후쿠시마 이후」를 상재했다. 대구의 지역출판사 '한티재'에서 유일하게 펴낸 시집의 발문이 시인 이하석의 글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시인의 첫시집 「투명한 속」을 찾았으나,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광물학적 상상력'이 궁금했다.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온다, 먼지와 녹물로 / 얼룩진 땅, 쇳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 버려진 아무것도 더 이상 켕기지 않을 때. / 유리 부스러기 흙 속에 깃들여 더욱 투명해지고 / 더 많은 것들 제 속에 숨어 비출 때, /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는 / 확실히 비쳐온다.
껌종이와 신문지와 비닐의 골짜기, / 연탄재 헤치고 봄은 솟아 더욱 확실하게 피어나 / 제비꽃은 유리 속이든 하늘 속이든 바위 속이든 / 비쳐 들어간다. 비로소 쇳조각들까지 / 스스로의 속을 더욱 깊숙이 흙 속으로 열며.
시인의 첫 시집 표제작인 「투명한 속」(26쪽)의 전문이다. 첫 시집에서 선한 12편의 광물 소재는 - 총기, 방독면, 철조망, 타이어, 폐차장, 유리조각, 쇳조각, 깡통, 비닐, 연탄재, 치약껍질, 껌종이, 신문지, 기름, 석탄, 못, 쇠꼬챙이, 시멘트, 하수구, 철모, 수통 등이다.
80년대 ‘광물학적 상상력’이라 불려 진 독자적인 시적 상상력을 구축한 시인의 시선집은 ‘문명 사회로부터 버려져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무기물들에 대한 극사실주의적인 묘사를 통해 물질 문명 세계가 지닌 비인간적이고 황폐한 삶의 현실을 섬뜩하리만큼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업’(7 ~ 8쪽)이라고 평가 받았다. 시선집은 97년 7월 제1판 제1쇄본 이다. 고마웠다. 15년 넘게 나의 손을 기다려 준 것이. 시인의 ‘광물학적 상상력’을 찾아 ‘꿩 대신 닭’으로 펼친 시선집이었다. 그런데 책장을 훑다가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주 오래전 나는 시인을 책으로 만났었다. 시인이 삼국유사의 신화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 엮은 ‘삼국유사의 현장기행’이었다. 하긴 그 시절 나는 짬만 나면 배낭을 둘러메고 이 산하를 쏘다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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