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숨어 사는 즐거움

대빈창 2014. 11. 12. 07:33

 

 

책이름 : 숨어 사는 즐거움

지은이 : 허균

엮은이 : 김원우

펴낸곳 : 솔

 

작년 계사년 새해 벽두. 첫 책으로 「변방을 찾아서」를 잡았다. 신영복 선생이 자신의 글씨가 있는 곳을 답사하고, 글씨가 쓰여 진 유래와 의미, 글씨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풀어 낸 책이다. 두 번째 꼭지가 강원 강릉 교산의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이었다. 선생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허균의 생애는 역사의 비극이며 아직 청산되지 못한 불우한 우리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했다. 허균 변혁정신의 현재적 가치를 찾아야 할 때다.

조선 중기 실학의 대두 허균(許筠, 1569 ~ 1618)은 혁명가였다. 허균의 가문은 당대 최고로 기득권세력이었다. 아버지가 초당 허엽이고, 허성과 허붕이 형이며, 누이는 허난설헌이었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그가 살았던 조선은 완고한 중세 봉건사회였다. 명문거족 선비 허균은 서얼 무리와 반역을 꾀하다 거사가 실패하여 처형되었다. 허균은 저잣거리에서 목이 베어지고, 머리는 시장바닥에 전시되었다. 민중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머리를 수습하여 장사 지내려했다. 허균은 소설 「홍길동전」에서 변혁주체인 호민(豪民)을 그렸다. 호민은 때를 기다렸다가 썩어 문드러진 사회를 엎기 위해 백성들을 조직적으로 영도하는 지도자를 가리킨다. 400년이 흐른 지금 ,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은 어떠한가. 신분제도 서얼차별은 없어졌지만, 지역차별·양극화·외국인이주노동자·비정규직의 계급차별은 더욱 교묘하게 민중의 목을 옥죄고 있지 않은가.

허균의 「한정록(閑情錄)」은 42세 되던 광해군 2년. 병으로 휴가를 얻은 요양기간동안 중국 고서들 - 세설신어(世說新語), 와유록(臥遊錄), 옥호빙(玉壺氷) 등의 글을 추린 허균의 독서노트다. 모두 15꼭지로,

 

은둔(隱遁) / 고일(高逸) / 한적(閑寂) / 퇴휴(退休) / 유흥(遊興) / 아치(雅致) / 숭검(崇儉) / 임탄(任誕) / 광회(曠懷) / 유사(幽事) / 명훈(明訓) / 정업(靜業) /현상(玄賞) / 청공(淸供) / 섭생(攝生)

 

1 ~ 2쪽 분량의 짧은 글 205편이 실렸다. 내용은 세속을 떠나 숨어 사는 사람들, 기이한 행적을 남긴 자, 고상한 생활을 한 사람들, 벼슬을 물러난 뒤 한가롭게 살다간 사람들, 산천을 보며 정신을 수양한 이야기, 은거하며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 도가의 양생술 등 일화, 잠언, 성찰이 글의 대부분이었다. 정업(靜業) 편의 머리글 ‘글 읽기의 즐거움’이 나의 섬 생활의 단면을 드러냈다.

 

글은 고요한 데서 하는 일 중의 하나인데,

한거閑居하는 이가 글이 아니면

무엇으로 세월을 보내며 흥을 붙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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