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먹염바다

대빈창 2014. 11. 19. 07:33

 

 

책이름 : 먹염바다 

지은이 : 이세기

펴낸곳 : 실천문학사

 

소야도 선착장 낡은 함석집 한 채 / 바다오리 떼 살얼음 바다에 / 물질을 하는데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이윽고 밤 되어 눈이 내리고 / 바닷가에 눈이 내리고 / 쪽마루 방자문 위에 걸린 가족사진에도 / 눈이 내리는데

갯 떠난 자식 생각하는가

갯바람에 얼굴 긁힌 노부부 / 밤 깊어가는데 / 굴봉 쪼는 소리

밤바다에 성근 눈발이 내리고 / 굴봉 쪼는 소리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 밤바다에 눈은 내리고

 

‘소야도 첫눈’(98 ~ 99쪽)의 전문이다. 시집은 5부에 나뉘어 54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최원식의 ‘바다가 가난한 나라의 시’다.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소야도·대섬·굴업도·이작도·당섬. 시편에 등장하는 섬들이다. 낙지·박하지·소라·가오리·바지락·갱이·삐리고둥·짱둥이·따개비·괭이갈매기·굴·밴댕이·황새기·파래·바다비오리·돌김·숭어·우뭇가사리·병어·간재미·박대·쭈구미·가막고둥·패랭이고둥·가마우지·아구·참게·망둥어·민챙이 등. 시편에 나오는 바다생물이다. 시인의 첫 시집은 서해의 섬과 바다를 한국시의 영토로 편입시켰다고 평가 받았다. 시인의 고향은 덕적군도의 문갑도다. 문갑도에 딸린 무인도가 묵도(墨島)다. 우리말로 ‘먹염’이다. 여기서 ‘염’은 어부들이 바다의 작은 바위를 부르는 이름이다. 시집의 표제 ‘먹염바다’는 시인의 고향이었다.

‘아시아의 근대성엔 자비가 없다는 것’(82쪽)을 시인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민통선 서해 작은 섬들의 참호로 파헤쳐진 산허리와 바닷가의 철조망에서 읽었다. 하지만 시인의 출생지가 더 참혹했다. 먹염바다는 덕적군도 일대에서 활동한 좌익들을 수장(水葬)한 곳이었다. 같은 연배인 시인이 걸어 온 삶의 길을 나는 막막한 심정으로 한참 들여다보았다. 시인은 현장노동자 출신이었다. 일당 1700원에 한 달 150시간 이상 잔업 야근을 하는 주물공장을 노동자들은 아우슈비츠라 불렀다. 열세 군데의 공장에서 해고와 이직하는 신산스런 삶은 비합 조직을 해체하고 제도권으로 나오면서 문학으로 존재 이전을 모색했다. 시인은 말했다. 나의 서재는 현장에 있었다고. 시인은 어느 여성 노동자의 자취방 라면박스 위에 올려 진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과 전태일 평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가장 울림이 큰 책이었다고. 지금도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은 시장통 좌판에 앉아 굴봉을 까는 파랗게 젖은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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