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밥그릇 경전
글쓴이 : 이덕규
펴낸곳 : 실천문학사
시인 이덕규의 두 번째 시집 ‘밥그릇 경전’은 1·2부에 나뉘어 54편이 실렸다. 가장 긴 시편인 ‘괘랑리 시편’(106 ~ 108쪽)은 서낭당이 헐려 나가고 길이 나며 토지 거간꾼들이 들락거리며 땅값이 널을 뛰는 1연과 생떼 같은 장정들이 술로 거꾸러지고, 폭주하는 덤프트럭에 비명횡사하고, 과부들이 청바지 차림으로 공장에 취직하는 2연, 허물어진 서낭에서 굿판을 벌이는 3연 그리고 마지막 연은 지방도로 변에 가든이며 주유소며 러브호텔의 꼬마 알전구들이 껌벅이며 유혹한다. 천민자본주의의 가차 없이 확장하는 자본의 기세에 속수무책 무너져 내리는 농촌의 피폐한 실상을 읊조렸다. 여기서 괘랑리는 경기 화성 정남의 농촌 마을로 시인의 고향이며 현재 삶의 터전이다. 7,000평의 논농사를 오리농법으로 유기농 농사를 짓는 시인은 1996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집은 ‘천년의시작’이 주관하는 제4회 시작문학상 수상작이다. 시인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천천히 칼을 갈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 시집은 디자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단순한 흙빛이 떠올려지는 표지는 대지를 일구는 농부가 연상되었다. 앞면지는 시인이 살고 있는 동네의 연꽃과 연못을, 뒷면지는 시인의 논을 패턴화시켰다. 농촌 현실에 기반한 민중 목소리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선입견을 비웃듯 시인의 어조는 익살스럽고 해학적이었다. 시인의 능청스럽고 유쾌한 넉살에 시편을 읽어 나가면서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경지에 이르면 /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 테두리에 / 잘근잘근 씹어 외운 /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 박혀 있는, 그 경전 /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 어느 대목에선가 / 할 일 없으면 /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표제작 ‘밥그릇 경전’(16 ~ 17쪽)의 마지막 연이다. 여기서 밥그릇은 개밥그릇을 가리켰다. 하나만 더. ‘찰떡궁합’(64 ~ 65쪽)의 3연이다. 분홍빛 복숭아 꽃잎이 바람에 날려 개똥 무더기에 얹힌 장면을 묘사하는 시인의 에로틱한 리얼리즘(?)이 절창이다.
옅은 바람이 불 때마다 / 도화(桃花) 년은 하르르 / 하르르 진저리를 치고 / 시커먼 개똥쇠는 / 히죽이죽 웃습니다 / 서로 죽고 못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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