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부슬비 내리던 장날

대빈창 2014. 12. 8. 05:21

 

 

책이름 : 부슬비 내리던 장날

지은이 : 안학수

그린이 : 정지혜

펴낸곳 : 문학동네어린이

 

아동문학가 안학수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시인 유용주의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의 발문 ‘바람에 기대어 우는 서낭’이었다. 문단의 중앙을 벗어나 변방에서 살아가는 문인들과의 우정에 대한 해학적인 글보다 어릴 적 사고로 장애인이 된 시인의 불우한 삶에 서글프고 짠한 마음이 오래 남았었다. 가난했던 시절, 충남 공주에 살았던 다섯 살의 시인은 옆집 친구네 놀러갔다가 척추장애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당해 평생을 꼽추로 살아가야 했다. 그때 17살이었던 사고의 가해자였던 친구 형은 죄책감으로 평생을 알코올중독자로 살다 죽었고, 동생이 비탈에서 굴러 떨어져 다친 것으로 안 누나는 생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픈 상처는 시인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하늘까지 75센티미터’에 잘 그려졌다. 여기서 75㎝는 일반인과 척추장애인의 키 차이를 가리켰다. 시인은 몸이 아프고 가난해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동시를 써왔다. 한때 금세공 일을 배워 보령에서 금은방을 운영했으나 현재는 전업작가로 ‘바다가 기름으로 뒤덮인 태안반도 옆’(118쪽)에서 살고 있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제4회 ‘권정생 창작기금’ 수혜작으로 선정된 동시집을 펼쳤다. 권정생창작기금은 ‘몽실언니’, ‘강아지똥’의 아동문학가 故 권정생선생을 기리기 위해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 2010년 제정했다. 문화재단은 권정생(1937 ~ 2007) 선생의 유지에 따라 남북어린이와 세계분쟁지역 어린이를 돕는 단체다. 이 동시집은 4부에 나뉘어 51편의 동시와 시인 최종득의 해설 ‘슬픔을 힘으로 만드는 동시’가 마무리를 맡았다. 시집은 농촌과 도시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힘없고 가난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서글픈 모습과 작고 하찮은 바닷가 생명들과 오염과 개발로 파괴된 갯것 생물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생태시가 실렸다.

 

배고프고 오갈 데 없다고 / 느닷없이 찾아온 눈먼 게 하나

바람 차고 물결 거친 바다에 / 도로 내칠 수는 없어 / 어진 가무라기는 / 단칸방 움집으로 맞아들였다.

겨운 삶을 가엾이 여겨 / 따듯이 보살펴 주니 / 그대로 눌러앉은 속살이게

고마운 줄 알겠다지만 / 신세를 꼭 갚겠다지만 / 집게발이 너무 느리고 여리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 거저 베푸는 가무라기 / 갯가에선 이웃도 살붙이란다.

 

‘가무라기의 마음’(36 ~ 37쪽)의 전문이다. 가무라기는 가막조개, 속살이게는 조개나 해삼류에 기생하는 게라고 각주에 붙였다. 속살이게를 조가비 속에 품고 사는 가무라기의 생태를 시인은 가무라기의 어질고 넉넉한 마음으로 표현했다. 주문도 갯벌의 상합은 속살이게를 품어주고, 섬사람들마저 먹여 살렸다.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모래펄에 사는 상합의 조가비 안에 약지손톱만한 작고 여린 게가 한 마리씩 살고 있다. 수많은 조개들 중 상합만이 몸 안에 게를 품었다. 귀한 상합은 값비싼 가격에 팔려 혼자 사시는 섬 할머니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펄을 뒤적여도 상합은 고맙게 한 결 같이 할머니들 손에 쥐어졌다. 주문도 갯벌은 상합의 화수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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