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내면기행
지은이 : 심경호
펴낸곳 : 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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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년대 고려의 김훤(1258 ~ 1305)부터 1900년대 조선의 이건승(1858 ~ 1924)까지 이 책에 실린 57편의 묘지명을 남긴 선인들이다. 옛 사람들이 묘지를 자찬한 것은 죽은 뒤에 실없는 명예로 묘도墓道를 사치스럽게 꾸미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썼다. 자표自表는 스스로의 무덤 앞에 쓸 묘표에 스스로 적는 글이며, 자명自銘은 자신의 무덤에 묻거나 무덤 앞에 세울 비명碑銘을 이른다. 그리고 자만自挽은 자신의 일생을 개괄하는 자전적 글쓰기가 포함된 것을 가리킨다. 이 책은 근대 이전 우리 선인들이 직접 쓴 자찬묘비명의 모든 글쓰기 양식을 망라하여 해당 인물의 일대기를 재구성하고 당시 시대상황의 이해를 도왔다. 선인들은 죽음에 대처하는 자세로 자신의 본래성을 추구하는 삶의 의미를 일깨웠다.
봉성鳳城 사람 금각琴恪은 자가 언공彦恭이다. / 일곱 살에 공부를 하기 시작해서 열여덟에 죽었다. / 뜻은 원대하지만 명이 짧으니 운명이로다.
「주류천하기」, 「풍창낭화」, 「일동록」, 「전의독서문」, 「조대집」을 저술한 금각의 묘지명이다. 허균(1569 ~ 1618)과 동문수학한 요절한 천재 금각(1569 ~ 1586)은 폐결핵으로 너무 이른 나이인 열여덟에 죽었다.
조선후기 화원의 총수였던 강세황(1713 ~ 1791)의 묘지명은 초상화에서 전신傳神의 예술창작론을 피력했다. 오재순(1727 ~ 1792)은 묘지명이 아닌, 40년간 애지중지 사용했던 석우石友, 즉 벼루에 명을 새겼다. ‘아들 셋 建昌건창, 건승建昇, 건면建冕을 두었는데, 거사는 그 둘째이다. 철종 무오년1858 동짓달 스무여드레에 강화 사기리沙器里에서 태어났다.’(113쪽) 나는 이건승의 자지自誌에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조선말 국운이 스러져가는 불운한 시대에 태어난 삼형제는 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기리 탱자나무를 보며 함께 컸을 것이다. 그리고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방법으로 인용되었던 문장을 이 책에서 만났다. 유한준이 1759년 정조19에 쓴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의 수장품에 부친 글石農畵苑跋> 중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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