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토종 곡식

대빈창 2014. 12. 11. 07:11

 

 

책이름 : 토종 곡식

지은이 : 백승우·김석기

펴낸곳 : 들녘

 

공저자가 낯익다. 들녘에서 시리즈로 출간되는 귀농총서의 다른 책에서 보았을 것이다. 백승우는 ‘강원유기농’ 회원으로 강원 화천의 유기농 농부이며, 김석기는 경기 안산의 농부로 「귀농통문」 편집위원이다. 이 책은 토종 곡식에 대한 농부들의 노하우와 토종 씨앗의 역사를 담았다. 잡곡은 재해로 벼농사가 안 되면 귀한 쌀을 대신해 농부들의 주린 배를 채워 준 곡식이었다.

밀(호밀)·조·기장·참깨·팥·콩·율무·수수·보리. 이 책에서 다룬 10가지 토종 곡식을 기룬 나이 드신 농부들은 팔기보다 집에서 먹으려고 뿌리고, 키우고, 거두었다. 1부 토종 곡식을 재배하는 농부는 풀무학교 정길섭, 농민운동가 출신 최명춘, 정농회원 김두봉, 생산자 모임에 몸담고 있는 이기준, 송찬수, 최홍근, 경종호는 산이 많은 강원과 충북에서 농사짖고 있었다. 2부 토종 씨앗을 갈무리하고 여적 지켜 준 농부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었다. 이 땅이 압축성장의 산업화 과정에서 농부들은 반강제적으로 도시로 이주했고, 그나마 농사를 짓던 분들이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은 텃밭에서 자기 먹을거리와 자식들에게 보낼 농산물을 키우느라 고맙게 토종 씨앗을 살린 것이다. 이제 씨앗을 받아 심는 사람도, 대를 이어 물려받을 사람도 거의 사라졌다.

현실의 농업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씨앗을 종묘상에서 사다가 심은 지 오래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종자 시장을 몬산토, 신젠타 등 초국적 기업이 - 국내 채소 종자 시장의 50%를 장악했다는데 있다. 매운 고추의 대명사격인 청양 고추는 소유가 몬산토다. 이 땅에서 개발되고 재배되어 온 청양고추 종자가 중국 산동성에서 채종돼 역으로 국내 농민들에게 팔리고 있다. 초국적 종자 기업들은 GMO 작물(유전자 조작), 수확물이 종자로써 다시 싹을 틔울 수 없게 만든 터미네이터 종자, 자사의 농약을 뿌려야 병해충 방제가 가능한 트레이터 기술 등으로 이 땅 농부들의 종자 주권을 빼앗아갔다.

토종씨앗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매년 재래종 씨앗을 자가채종하고 계시다. 무·배추·알타리·양파는 어쩔 수 없이 종묘상에서 포트 묘를 사다 심지만, 강낭콩·메주콩·서리태·완두콩·보리·땅콩·마늘·아주까리·파·쪽파·상추·시금치·도라지는 어머니가 씨앗을 받으셨다. 이 책에 나오는 할머니들처럼 어머니는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먹이기 위해서였다.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가 담그신 김장과 간장·된장·고추장을 밥상에 올려 초국적 종자기업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집 앞 텃밭을 일구는 어머니의 그루갈이, 섞어짓기, 돌려짓기는 가히 예술적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노하우를 전수받아야겠다. 나의 게으름은 말만 앞 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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