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1 - 시대를 담는 그릇
지은이 : 김봉렬
찍은이 : 이인미
펴낸곳 : 돌베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처음 선보인 해가 1993년이었다. 나는 답사기를 통해 이 땅의 문화유적에 눈을 떠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인가 미진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한국 고건축의 청맹과니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품절된 책이 눈에 뜨였다. 1999년 이상건축에서 나온 「한국건축의 재발견」 시리즈였다. 이 책은 건축가이며 건축사학자인 저자가 한국 전통건축의 주요 테마 25가지를 95년부터 97년까지 3년 동안 이상건축에 연재한 글 모음집이었다. 아쉬웠다. 나는 무턱대고 개정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의 깜냥은 중고 책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2006년 드디어 돌베개에서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로 새롭게 단장하고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무려 3권의 부피가 도합 1200여 쪽에 이르렀다. 책 판형 190*240에 담긴 컬러 사진들은 시원시원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한국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1권의 추천 글과 발문은 건축가 승효상과 정기용의 글 부조로 한층 빛났다. 개정판 서문의 첫 문장은 이렇다. ‘건축은 시대의 모습을 담는 그릇이요, 깨달음과 생활이 만든 환경이며, 인간의 정신이 대지 위에 새겨놓은 건축물이다.’이는 시리즈 3권의 부제였다. 1권 ‘시대를 담는 그릇’의 9개 챕터에 담긴 한국의 고건축이다.
석굴암·불국사·다보탑·석가탑 / 안압지·경천사지10층석탑·마곡사5층석탑·마곡사 / 금산사·미륵사지·귀신사 / 종묘 / 완주 화암사·부안 내소사·개암사·고창 선운사 창담암 / 부용동 원림(낙서재·곡우당·동천석실·세연정)·해남 녹우당 / 양동마을(관가정·향단) / 양동마을(서백당·무첨당·수졸당 등) / 수원 화성(화서문·서북공심돈·장안문·서장대·노대·방화수류정·화홍문 등)
글을 읽다보면 독자는 저자의 폭넓은 지식과 사유 그리고 깊은 통찰이 담긴 문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석굴암은 인도에서 시작된 석굴운동이 지리적으로 9,000㎞, 시간적으로 1,000년에 걸친 긴 여정 끝에 통일신라 경주 토함산에서 찬란하게 마지막 꽃을 피운 것이며, 마곡사5층석탑과 경천사지10층석탑을 통해 13세기 고려 승려들과 건축가들이 겪었을 문화적 갈등을 이해한다. 그리고 양동마을 관가정에서 ‘자연미’는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우연이 아닌, 건축가의 계산되고 인공적인 기법의 결과로 얻어지는 ‘자연스러워 보이는 미’인 것이다. 건축학자의 글이 이렇게 매혹적으로 유려하다면 글쟁이들은 어떻게 밥벌이를 하라는 말인가. “건물은 건축의 일부일 뿐, 건축 그 자체가 아니다. 앞뜰을 스치는 바람, 공간을 메우거나 이어주는 소나무의 그늘, 간밤 용맹정진의 치열함을 씻어주는 새벽 공기도 건축물에 포함되야 한다. 한국 건축의 주제는 건물 사이의 여백이며, 여백과 건물과의 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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