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2 - 앎과 삶의 공간

대빈창 2014. 12. 26. 05:42

                                                 

 

책이름 :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2 - 앎과 삶의 공간

지은이 : 김봉렬

찍은이 : 이인미

펴낸곳 : 돌베개

 

건축가 김봉렬은 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서울을 벗어 난 고건축 여행지로 경북 경주 양동마을과 전남 순천 선암사와 전남 담양 소쇄원을 추천했다. 양동마을은 생명력을 지닌 한국 유일의 전통마을로, 선암사는 소박하고 간략한 건물들이 모인 산속의 작은 도시로, 소쇄원은 대숲의 바람과 물소리, 소쩍새 울음이 미세하게 어우러진 청각적 정원으로 추켜세웠다.

 

충북 충주 미륵대원 / 전남 담양 소쇄원 / 경북 경주 독락당과 옥산서원 / 경북 상주 양진당과 대산루 / 충남 논산 윤증고택 / 강원 강릉 선교장 / 전남 장흥 방촌마을 / 전남 남원 광한루원 / 전남 순천 선암사

 

2권 ‘앎과 삶의 공간’의 9개 챕터에 담긴 한국 고건축이다. 각 장마다 부록처럼 주변 유적에 대한 간략한 해설이 첨부되었다. 저자는 소쇄원에서 한국건축이 성취한 가장 높은 경지의 경관을 확인하며, 망가져가는 위대한 유산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서 “볼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말라.”고 분노했다. 상주의 양진당에서 논리의 형식만으로 좋은 건축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면 ‘형식을 따르되 내면의 진실한 가치를 소중히 실현하려는 정신이 건축으로 표현’되었다고 대산루를 평가했다. 선암사가 최고의 사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불사를 벌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계와 태고 두 종단의 소유권 소송으로 순천시가 임시로 관리를 맡은 지가 30년이 지났다. 이 현상은 역설적으로 현대인의 천박한 미적 감각은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온전한 옛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했다. 이 땅의 모든 사찰이 ‘중창불사’라는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선암사만은 어떠한 건축적 변화도 없었다.

표지 사진은 윤증고택의 작은 사랑방에서 앞의 누마루를 통해 보이는 바깥 경관이다. 숨 막히는 예학자의 주택 곳곳의 숨겨진 여유의 장소와 경관들도 볼거리지만, 江華學派의 창시자 하곡霞谷 정제두鄭霽斗(1649 ~ 1736)가 윤증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윤증의 사상은 양명학을 거쳐 실학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국적이 있는 정원은 세계적으로 10개 이내라고 한다. 저자는 한국 정원의 특징을 인간의 손길이 무수히 닿았지만 일부러 만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자연미’에서 찾았다. 이 땅 최고의 정원은 누구나 담양 소쇄원을 꼽는다. 15년이 넘도록 이 땅의 산하를 쏘다녔으나, 나는 한군데 비장의 답사처를 마음속에 남겨놓았다. 그날 정원 입구의 대나무밭에 함박눈이 펑펑 퍼부었으면 나의 마지막 여행은 축복을 받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