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 님 시집
지은이 : 하종오
펴낸곳 : 창비 / 애지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 1981년 ; 창비 ; 75편 ; 발문 시인 김명수 - 평야에 굽이치는 뜨거운 노래
님 시집 ; 2005년 ; 애지 ; 56편; 해설 시인 이경림 - 일인이면서 만인이고, 만인이면서 일인인 님
서수찬 시집 「시금치 학교」의 해설은 맹문재의 <만인보萬人譜 시학>이다. 이 글에 1980 ~ 90년대에 출간된 농촌시집이 소개되었다. 몇 권의 시집이 고작이었던 나는 얼씨구나 욕심내서 손에 넣은 시집 중 하나였다. 출간된 지 30여년이 훌쩍 넘었지만 표제시가 눈에 익었다. 혁명과 시의 시대를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보냈던 나에게 리얼리즘 시인 하. 종. 오. 시 한편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이름 석자는 익숙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시집을 펼쳤다.
지금은 인간을 잃어버린 시인과 / 인간을 못 구하는 詩마저 증오스럽나니 / 멈춰 서서 아득한 하늘을 우러르면 / 피흘려라 눈망울 찔러 대며 오는 눈발 / 어디에서 몸져 누워 아픈 마음 덮을까 / 불빛에도 붉은 정맥 보이는 어미는 / 아이의 보이지 않는 꿈을 보듬으며 / 시인보다 시보다 동전 한닢 더 기다리는데 / 어둠은 짙어 거리마다 돌을 감춘다
1980년에 쓰여진 ‘멀디먼 서울’(56 ~ 57쪽)의 부분이다. 지하도 계단의 어린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어미를 그린 시다. 시를 읽어나가며 차오르는 물기로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2부 20편의 시는 火葬에서 不歸까지 장(葬)에 관한 일련의 연작시가 묶였다. 국가폭력의 일상화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가난한 자들의 비명이 난무하는 신자유주의 시대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님의 동네에 제가 온 것은 우연도 필연도 아니었습니다. 온전하게 생을 살고 온전하게 죽음에 이르고 싶은 제 가슴에 저 들과 산이 가득 들어찼기 때문이었습니다.
‘제2부 제6편’(52 ~ 53쪽)의 일부분이다. 시집은 도서정가제를 앞두고 온라인서적에서 10년 묵은 시집을 염가한정판매로 내놓은 것을 얻었다. 순백의 겉표지에 세월의 때가 묻었다. 56개의 시편들은 3부에 나뉘어 실렸는데 ‘님, 그이, 저이, 저’ 네 개의 대명사가 등장한다. 이들은 논과 밭을 갈아먹는 강화도의 주민들로 시인의 이웃들이다. 시집은 <님 시편>(민음사, 94년), <님>(문학동네, 99년)에 이은 ‘님’ 시리즈의 3번째 책이다. 시편들은 모두 연작시이며 산문시다.
하종오는 다작(多作)시인이다. 1975년 등단한 시인은 시력(詩歷) 39주년을 맞아 28번째 시집을 펴냈다. 시인은 말했다. “내가 가진 것은 시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랐던 저 청년 시절부터 내가 이웃들보다 더 가진 것이 있다면 시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지금까지 나는 줄곧 시만 써왔다.”고. 반가운 일은 시인이 온전히 강화도 사람이 되었다. <님 시집>을 썼던 10여년전 강화도에서 홀로 생활했던 시인은 2013년 가족을 이끌고 서울을 떠나 강화도에 정착했다. 나는 시인의 최근 시집 <신강화학파>를 시장바구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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