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대빈창 2015. 1. 5. 07:08

 

 

책이름 : 강의

지은이 : 신영복

펴낸곳 : 돌베개

 

2013년(계사년) - 변방을 찾아서 / 2014년(갑오년)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2015년(을미년) - 강의. 새해를 맞는 첫 책으로 신영복 선생의 책을 잡은 지 3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선생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이 표지그림의 봉합엽서 검열필이 뚜렷한 90년에 햇빛출판사에서 나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그리고 90년대 중후반 「나무야 나무야」(돌베개)와 「더불어 숲 1·2」(중앙M&B)와 신영복 홈페이지 ‘더불어 숲’이 펴낸 「나무가 나무에게」(이후)와 서화에세이 「처음처럼」(랜덤하우스)이 책장에서 어깨를 겯고 있습니다. 성질 급한 나는 이 책을 2004년 예약발매로 손에 넣었고, 10여년이 지나 다시 새해 첫 책으로 펼쳤습니다.

‘강의’는 신영복 선생이 성공회대학교에서 열었던 ‘고전 강독’이란 강좌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고전들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사상 논어, 대학, 중용,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를 중심으로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불교, 신유학, 양명학 등이 등장합니다. 선생은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인간관계의 황폐화’(242쪽)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가 양산하는 물질적 낭비와 인간적 소외를, ‘관계론’을 화두 삼아 근본적 시각으로 재조명합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가동시키는 동력인 우민화愚民化 메커니즘은 회의를 넘어 절망적이기까지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CF 광고입니다. TV를 멀리했지만 금방 ‘러시앤캐시’의 감성광고가 떠오릅니다. 광고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합니다. 밥상머리에서 어깨너머로 힐끗 본 광고가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비싼 이자로 월급 받는 일 더는 못 하겠어”

착하고 순하게 생긴 여 주인공이 사표를 제출합니다. 여자 친구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근데 돈 빌려주고 이자 받는 건 카드나 캐피탈이랑 똑 같은 거 아니야.”

수산시장을 지나고, 분식집으로 보이는 식당에서 무엇인가를 먹으며 직장 남자 선배가 따듯하게 타이릅니다.

“가족끼리도 돈 문제는 어려운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

계산대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여 주인공이 계산을 하자, 주인 할머니가 웃으며 말합니다.

“이제 저축은행도 한다며.”

한국 중장년 남성의 향수를 자극하는 태권V를 캐릭터로 내세운 OK저축은행으로 안산을 연고지로 한 남자 프로 배구단도 운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서비스 -

순진한 감성의 이면에 감추어진 냉혹한 현실은 이렇습니다. 대부업체가 위험한 것은 턱도 없는 이자 때문입니다. 제1금융권보다 7배 이상이나 높습니다. 대부업체는 법정 최고금리인 34.9%라는 높은 이자를 받습니다. 금액이 높을수록 이자도 커집니다. 결국 3년만 빌려 쓰면 원금보다 많은 이자를 무는 꼴입니다. 높은 이자율에 묶여 경제적 회생이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지금 이 땅은 대부업체를 아름답게 포장하여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 감성 광고가 방송을 도배질하고 있습니다.

동양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인성을 ‘개별 인간의 내부에 쌓여가는 어떤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의 의미’(42쪽)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서양과학 기술과 자본주의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동양고전이라는 거울에 비춰 참된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저는 묵자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가장 첨예하고 급박한 세계사적 문제는 반전평화입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전국시대의 패권적 질서와 지배계층의 비판세력으로 기층 민중의 이상을 제시한 제자백가가 있었습니다. 중국 사상사에서 최초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좌파조직이 묵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