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3 - 이 땅에 새겨진 정신
지은이 : 김봉렬
찍은이 : 이인미
펴낸곳 : 돌베개
1권 ; 1999년 2월, 눈 덮인 의릉을 바라보면서
2권 ; 1999년, 20세기의 마지막 초여름 타오르미나, 에트나 화산을 마주보면서
3권 ; 1999년 가을, 일산 묘원에서
개정판 ; 2006년 3월, 서리풀 마을에 떠 있는 13층 집에서
아둔한 나는 초판 서문은 각자 다른데, 왜 개정판 서문은 하나뿐인가 하는 바보스런 생각에 잠시 빠졌다. 그리고 이내 도리질을 쳤다. 당연하지 않은가. 3년간 월간지 「이상건축」에 발표된 글들이 3권의 단행본으로 엮였고, 경제 사정으로 문은 닫은 출판사와 함께 책은 절판되었다. 다행스럽게 나는 절판된 지 7년이 지나 새로운 출판사에서 얼굴을 내민 책을 손에 넣었다. 각 권마다 서문이 있듯이 당연히 발문이 뒤따랐다. 건축가 정기용, 시인 황지우, 한국학 최준식. 저자의 명성에 걸맞은 발문을 쓴 이들의 면면이다. 3권의 발문을 쓴 최준식은 “이런 책이 잘 안 팔리는 나라. 우리는 정녕 이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라고 이 땅의 한심한 독서 풍토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자신이 갔다 온 건축물은 저자의 설명이 쏙쏙 들어오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종잡을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죽을 때까지 경제성장이라는 신화에 짓눌려 무한경쟁 전선의 소모품으로 내몰리는 한국인들은 나이가 들었지만 오늘도 초조한 마음으로 자기계발서를 들썩이고 있을 것이다 . 건축가 승효상은 추천글에서 “옛 건축의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건축이 주인공인 대하소설이요, 건축을 매개로 한 우리의 문화 총서이며 건축이라는 켜를 통한 우리의 역사서”(1권, 13쪽)라고 이 책을 복합인문서로 상찬했다.
해방이후 건축을 공학으로 생각하는 이 땅은 어마어마한 물량을 내세우지만 내 놓을 게 없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생각을 자기화해 표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좋은 건축이 창조될 수 없었다. 이는 문화재 복원도 마찬가지였다. ‘도동서원의 수월루는 구조도 빈약하고 지나치게 기교를 부려 전체의 품격에 맞지 않는 졸작’(124쪽)이고, 1987년 복원한 도동서원 석축은 손을 대면 댈수록 품격을 훼손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을 뿐이다. 1970년대 군사정권은 충무공 생가 자리에 급조된 현충사를 지어 민족의 성지로 만들었고, 강화도 전적지의 콘크리트 한옥에 계란색 단청으로 위장된 한국적 전통을 고취했다. 개발독재자는 ‘문화적 영웅주의와 쇼비니즘이 빚어낸 복원’(263쪽)으로 건축은 파괴하고 건물만 남겼다.
'건설은 파괴다'라는 근대 한국의 등식은 현재 진행형이다. 소수서원의 신성한 숲을 밀어버리고 콘크리트 한옥 유물관을 들여 전통적인 경관을 파괴했다. 나는 답사기 ‘뜬돌과 낮꿈’에서 미적 천박을 이렇게 표현했다. “경내를 돌면서 느낀 감성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어이없는 몰골이었다. 콘크리트 덩어리는 천박한 원색 단청으로 치장하여, 학식 높은 선비들의 고담한 자리에 몰상식한 기녀가 떡하니 한자리를 차지한 느낌이었다.” 3권 '이 땅에 새겨진 정신'에 담긴 저자의 발자취가 스민 전통건축은,
병산서원 - 원지정사, 옥연정사 / 부석사 - 초암사, 성혈사, 소수서원 / 도동서원 - 정수암, 낙고재, 관수정, 제일강산 이로정 / 통도사 - 안양암 / 도산서당과 도산서원 - 경류정, 퇴계태실, 퇴계종택, 시사단, 번남댁 / 봉정사 - 영선암, 개목사 원통전, 함벽당, 명옥대 / 안동의 재사들(남흥재사, 서지재사, 가창재사) - 태장재사, 능동재사, 금계재사, 빈동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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