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백석시전집

대빈창 2015. 2. 13. 04:31

 

책이름 : 白石詩全集

엮은이 : 이동순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96년 고급요정 대원각(부지 7,000평, 재산가치 1000억원)을 조건 없이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고, 1997년 창작과비평사에 2억원을 출연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토록 한 여인은 1999년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바로 이 여인이 김영한(金英韓)이며 백석의 연인으로 자야(子夜)였다. 둘의 만남은 기생이었던 진향이 함흥영생여고 교사들의 회식 자리에 나갔다가 교사였던 백석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이런 말을 했다. “1000억원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백석과 자야는 20대에 만난 비련의 연인들이었다. 뜨겁게 사랑한 지 3년 만에 남과 북으로 헤어졌다. 백석이 자야를 위해 쓴 시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이런 사실은 1987년 백석이 해금되고 창작과비평사에서 이 책을 펴내자 자야 여사가 연락을 하여 슬픈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 신촌 하차 / 신수동시장 앞 / 10時 문 연다 / 중국산동한의원 / 택시 - 신수시장 앞 / 마을버스 1번 300원 - 책의 속면지에 적힌 메모다. 1999년 10쇄판이다. 그러고 보니 김영한 여사가 세상을 뜨던 해에 나는 책을 손에 넣었다. 그때 나는 목디스크로 고생했는데, 지인의 소개로 신촌의 중국인이 운영하던 한의원에 통원 치료하며 침과 부항을 떴다. 한 달간 김포에서 신촌까지 직행을 이용하며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이 시전집을 펼쳤을 것이다.

전집은 백석의 유일한 시집이며 첫 시집 「사슴」의 33편과 미발굴 61편의 시 그리고 산문 7편이 묶였다. 엮은이의 해설 ‘민족시인 白石의 주체적 시정신’과 부록으로 白石연보, 白石 작품연보와 600여개의 북방 사투리에 대한 낱말풀이로 구성되었다. 이 책 초판은 1987년 11월에 발행되었다. 나의 대학시절로 그때 월북문인들의 작품이 한꺼번에 해금되었다. 처음 잡은 지 15년이 지난 책술이 누렇게 변한 시전집을 다시 잡았다. 시인 안도현이 펴낸 「백석 평전」 때문이었다. 안도현은 백석의 시 ‘모닥불’을 스무 살 무렵 때 만났다. 30여 년 간 품어 온 선배 시인에 대한 애정을 한 권의 책으로 풀어 낸 것이다. 문학동네에서 출간 된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의 한 구절을 따왔다. 15여 년 전 나는 이 책을 얼마나 건성으로 잡았던가. 시인의 본명이 새롭게 다가왔다. 백기행(白虁行, 1912년 ~ 1995년). 시 ‘北方에서’의 부제는 ‘鄭玄雄에게’다. 겉표지의 컷을 그린 이가 정현웅(1939)이었다. 나의 어릴 적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애정이 가는 ‘夏沓’(28쪽)의 전문이다.

 

짝새가 발뿌리에서 닐은 논드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어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눞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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