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저녁의 슬하

대빈창 2015. 6. 19. 07:00

 

 

책이름 : 저녁의 슬하

지은이 : 유홍준

펴낸곳 : 창비

 

喪家에 모인 구두들(실천문학사, 2004년)

나는, 웃는다(창비, 2006년)

저녁의 슬하(창비, 2011년)

북천 - 까마귀(문학사상, 2013년)

 

시인 유홍준이 펴낸 시집들이다. ‘독자적인 발성법으로 해체시와 민중시 사이에 새로운 길을 하나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첫시집을 찾았으나, 손에 넣지 못했다. 품절된 시집을 중고샵에서 발견했는데 고약하게 원가보다 높은 가격을 매겼다. 나의 성심은 여기까지였다. 2013년 제28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시인 시선집인 「북천 - 까마귀」보다, 직접 보고 느낀 삶의 비애를 고스란히 시 속에 녹여 냈다는 세 번째 시집을 펼쳤다.

 

겨드랑이까지 오는 긴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 애액 대신 비눗물을 묻히고 / 수의사가 / 어딘지 음탕하고 쓸쓸해 보이는 수의사가 / 꼬리 밑 음부 속으로 긴 팔 하나를 전부 밀어넣는다

 

‘인공수정’(98 ~ 99쪽)의 1연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세계의 불모성과 폭력성을 보여주는 시집은 부의 구분 없이 70 시편과 시인 김언희의 발문 ‘직방인(直防人)의 초상’이 실렸다. ‘저녁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는 ‘슬하’(42 ~ 43쪽)의 한 구절로 시집의 표제를 따왔다. 사진이 실린 시가 두 편이다. ‘그리운 쇠스랑’(17쪽)의 널브러진 쇠스랑과 ‘나무눈동자’(87쪽)의 나무옹이다.

시편들 중 ‘폐쇄병동에 관한 기록’이 곧잘 뜨였다. ‘몸무게를 다는 방법’에서 시인은 환자 최경서씨의 몸무게를 달고, ‘혈서’의 환자 서부기씨는 피해망상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내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자들’에서 정신병동 입원환자들이 시인의 헌옷을 입고, ‘구름에 달 가듯이’에서 환자들은 알약을 삼키고, ‘묶인 불’에서 정신병원 흡연실 앞 일회용 가스라이터가 등장한다. 아버지의 오랜 병환으로 고교를 간신히 졸업한 시인의 삶은 신산스러웠다. 서울 용산시장 고추판매, 부산 밀링공, 경북 영양 고추푸대 품팔이, 공사판 막노동, 산판일, 진주 제지회사 노동자, 하동 정신병원 폐쇄병동 등. 다행이다. 시인은 현재 경남 하동의 이병주문학관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문창과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작지만 울림이 큰 ‘시인의 말’의 한 구절이다.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시인이 되고 교사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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