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육체쇼와 전집
지은이 : 황병승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천민자본주의 체제에 어깃장을 놓는 고난의 생태적 자급자족 삶을 살던 젊은 아나키스트 부부가 섬을 떠났다. 남편은 중앙대 연극과, 아내는 인터넷 진보신문 기자 출신으로 3년 전 볼음도에 처음 발을 디뎠다. 윤구병 농부철학자가 일구었던 변산 공동체에서 농사를 배웠고 강화도를 거쳐 민통선 섬 볼음도에 정착했다. 나에게 좋은 말동무였다. 그네들은 나를 황송하게 낙도오지의 진보주의자로 대접했다. 주일에 한두 번 볼음도에 건너갈 적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 대했다. 젊은 부부는 고향 강릉으로 이사를 앞두고 주문도 나의 집을 찾았다. 주문도 나들길을 걷고, 선창 식당에서 점심을 하는 약속을 잡았다. 하늘은 우리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풍랑으로 배가 결항되었다. 젊은 부부는 우리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책장에 눈길을 주던 그네들이 놀란 눈으로 시집 한 권을 빼들었다.
“이런 시집도 잡으시네요. 저희는 이런 쪽은 아닌데······.”
‘한국 전위시의 최전선’, ‘미래파의 기수’, ‘한국 현대시의 현재’는 시인 황병승을 가리키는 수식어다. 그만큼 2000년대 등장한 미래파의 난해함은 소통이 불가했다. 서정시의 전복을 꾀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던 미래파 담론의 핵심에 선 시인의 최근 시집. 자발적 가난을 추구한다는 생태주의자의 책장 한 구석을 차지한 시집에 그들은 의아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책의 유혹에 약하다. 소설가 김도연의 첫 소설집은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다. 20여년전 나는 공장생활을 하다 다리가 부러져 고향 시골로 낙향했다. 할 일없던 나는 단편소설을 긁적여 지방지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심사위원은 소설가 현길언이었다. 결선의 세 작품중 하나가 내 글이었는데, 당선작은 김도연의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였다. 이 작품은 소설집에서 「가수는 노래하지 않는다」로 제목을 바뀌었다. 소설집의 해설은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자연의 비극과 시간의 소극’이다. 세월은 흘렀고, 문학평론가의 이름 석자가 나의 뇌리 한 구석에 입력되었을 것이다.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 눈길이 갔다. 그런데 한국시의 전위성을 대표하는 시인의 최근 시집의 해설을 쓴 이가 눈에 들어왔다. 손이 가질 않는 시집을 억지로 펼쳤다. 생각보다 난해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번 시집에 두드러진 소설적 서사 때문일 것이다. 부 구분 없이 46편이 실렸는데, 시가 180여 쪽을 차지했다.
‘저는 누구입니까 이 육체와 전집은 누구의 것입니까’
표제시 ‘육체쇼와 전집’(50 ~ 54쪽)의 한 구절이다. 80년대 중반, 강의를 빼먹고 등나무 벤치에서 빈둥거리다 별 생각 없이 남들 따라 창비 영인본 전집을 월부로 샀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책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다. 표지의 컷 그림이 눈길을 끈다. 겉표지 시인의 컷이 초점이 흔들린 사진처럼 보였다. 그린이는 가수 성기완이었다. 내 책장의 시집은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 꽤 된다. 문학과지성사 시집의 트레이드마크는 단연 시인의 캐리커처다. 문학과지성은 30년 넘게 표지 디자인을 고수했다. 그동안 시인의 캐리커처는 대부분 이제하와 김영태가 그렸다. 요즘 전통적인 컷과 다른 얼굴들이 시집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화가, 시인의 형제, 연예인, 동료 시인 등이 그린 컷과 자화상까지 나타났다. 아무래도 나에게 황병승 시집은 난공불락이었다. 시집의 리뷰는커녕 시집을 잡게 된 배경에 대해 횡설수설하다 서둘러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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