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거꾸로 가자

대빈창 2015. 6. 1. 06:33

 

 

책이름 : 거꾸로 가자

지은이 : 윤재철

펴낸곳 : 삶창

 

풍 맞아 쓰러지셨다가 / 다시 위암까지 겹쳐 / 위를 거의 전부 잘라내신 / 아버지 머리맡에는 늘 / 네모나고 커다란 로케트 건전지를 고무줄로 묶은 /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놓여 있었다

내가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옥에 갇혔을 때 / 어머니나 동생들이나 모두가 쉬쉬했지만 / 하루 종일을 라디오 들으시며 / 아버지는 알 것은 모두 알고 계셨다 / 그러고도 아무 말 없이 / 더더욱 라디오를 귀에 달고 사셨다는데

법정 공방 육 개월 / 그러나 막상 일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 아버지는 하루 종일 꼼짝않고 눈 감고 계시다가 / 어머니에게만은 이 자식이 빨갱이로 몰려 / 평생을 어찌 살꼬 어찌 살꼬 / 비로소 눈물 보이셨단다

그러고는 정말 / 라디오는 아버지의 명치를 찔러버렸는데 / 일심 판결 며칠 뒤 / 아버지는 라디오 걸어 잠그고 / 조용히 저승길 떠나셨다 / 내가 옥에서 나왔을 때 / 그 고무줄로 묶은 트랜지스터라디오는 / 아버지가 가져가셨던지 보이지 않고 / 우리 집 라디오 시대는 그렇게 끝이 났다

 

'고무줄로 묶은 트랜지스터라디오'(102 ~ 103쪽)의 전문이다. 윤. 재. 철. 시인의 이름 석자가 낯설지 않다. 그렇다. 「오월시」동인들이 주축이 된 『민중교육』지 사건. 모순 덩어리 교육현실에 눈감고 살아 온 참담한 부끄러움으로 5공 정권의 반민중성을 고발한 부정기간행물. 『민중교육』은 교사와 학생을 교육주체로 자리매김하는데서 우리 교육의 새 출발을 주장했다. 1985년 군홧발 정권은 교사들이 만든 무크지를 상대로 마녀사냥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시인은 죽마고우 시인 김진경, 소설가 송기원 등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강제로 교직을 잃은 시인은 전교조 창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회마을 / 청권사淸權祠 / 에밀레종 / 금오신화 / 시경詩經 / 물건리里 물건항港 방풍림 / 창호지 쪽유리 / 동지 팥죽 새알심 / 봉건지주 친일파 외할버지 미루꾸 캬라멜 / 내소사 청련암 / 완행기차 삶은 계란과 사이다 / 고무줄로 묶은 트랜지스터라디오 / 트로트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3편이 실렸고, 발문은 시인 김진경의 ‘유령, 혹은 잊어버린 존재의 목소리‘다. 1982년 「오월시」동인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그동안 ‘생활의 진실에 바탕을 둔 민중시’를 썼다. 이번 시집은 ‘지나간 시간에 묻힌 잊어버린 존재들의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시집은 2013년 제6회 오장환문학상에 선정되었다. 심사위원 김사인 시인은 이렇게 평했다. “윤재철 시의 단순하고 묵묵한 듯 깊고 풍부한 울림이야말로 고달픈 시대를 견뎌줄 사랑의 시적 형식에 가까운 것”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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