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가난한 휴머니즘
지은이 :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옮긴이 : 이두부
펴낸곳 : 이후
책의 장정은 128*182로 B6 46판. 분량 140여 쪽에 불과한 소책자를 손에 넣은 지 3년이 지났다. 사회주의자 김규항의 「B급 좌파 세 번째 이야기」를 잡다가 이 구절을 발견했다. - 가난한 나라 아이티의 한 소녀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먹고, 학교에 가고, 병원에 갈 수 있는 것이다.”(아이티 전 대통령 아리스티드가 지은 『가난한 휴머니즘』중에서) - 책에서 이 구절은 다섯 번째 편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 열세 살 먹은 세 명의 소녀가 쓴 민주주의에 관한 논평을 보면 “민주주주의란 음식과 학교, 보건을 누구나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라 정의해 놓았습니다. - (69 ~ 70쪽)
이 책은 아이티의 전 대통령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 Bertrand Aristide)가 가난한 민중들로부터 하루에 수 백 통 씩 받은 편지 속에 담겨있는 열망과 소망에 대한 답을 아홉 통의 편지로 갈무리한 것이다. 나는 아이티하면 ‘진흙쿠키’부터 떠올랐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한국판에서 본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빈민가인 시테솔레의 길바닥과 건물 옥상에는 지름 12㎝ 정도의 둥그런 원판이 햇빛에 말라가고 있었다. 이것은 소금과 마가린을 조금 섞은 거친 진흙을 햇볕에 말리는 진짜 진흙쿠키였다. 아이티의 가난한 아이들은 흙으로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아이티는 카리브해의 섬나라로 면적은 2만7750㎢ 한반도의 1/7 정도로, 인구 890만명 중 80%가 연간 100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최빈국이다. 문맹율은 45%에 달하며 기대 수명은 52세에 불과하다. 아이티는 ‘산이 많은 땅’이라는 뜻으로 국토의 75% 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졌다.
아이티는 1804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세계 최초 흑인공화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1915년 미국 보호령이 되면서 아이티의 역사는 쓰라린 상처의 연속이었다. 1957년부터 1986년까지 뒤발리에 부자의 30년 독재정권아래 민중들은 숨죽여 지냈다. 고단한 20세기를 견뎌 온 아이티는 1990년 역사상 최초의 민주적 절차로 아리스티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2000년에도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미국이 뒷배를 봐주는 쿠데타 세력에 의해 아리스티드는 외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아리스티드는 뒤발리에 독재정권에 저항한 가톨릭 신부로 아이티 민주화 운동의 살아있는 상징이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시대 세계화라는 미명아래 제1세계가 제3세계에 어떤 횡포를 저질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편지의 제목은 ‘누가 크리올 돼지를 죽였는가?’다. 여기서 크리올 돼지는 1980년대 전멸당한 아이티의 토종 돼지다. 아이티 기후와 조건에 잘 적응한 작고 검은 크리올 돼지는 아이티 시골 가구의 80 ~ 85%가 키우는 농촌경제의 핵심이었다. 1982년 국제기구는 돼지가 병들었으니 질병이 퍼지지 않게 도살하고, 더 나은 돼지를 들여온다는 약속을 했다. 13개월 동안 크리올 돼지는 모두 도살되고, 2년후 미국의 아이오와에서 새 돼지가 들어왔다. 하지만 새 돼지는 식수난을 겪는 아이티에서 깨끗한 식수와 90달러나 나가는 수입 사료만 먹었고 더군다나 덮개있는 돼지우리가 필요했다. 아이티 농민들은 ‘네 발 달린 왕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완전 실패한 프로젝트로 아이티의 농촌 경제를 황폐화시킨 주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