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건축, 우리의 자화상

대빈창 2015. 5. 29. 07:00

 

 

책이름 : 건축, 우리의 자화상

지은이 : 임석재

펴낸곳 : 인물과사상사

 

고속철 역사 / 관공서 / 교회 / 영화관 / 백화점 / 모텔 / 모델하우스 / 아파트 / 초고층 아파트 / 대형 의류매장 / 유교 자본주의의 메카(대치동 학원가와 신림동 고시촌) / 테헤란로 / 코린트식 양식 / 파고다 공원과 파고다 학원 / 최소공간(대학도서관 개인좌석)과 최대공간(골프 연습장) / 능선파괴 / 광장 / 금연 / 도심복원 / 지켜야 할 세 가지 것들(꽃가게, 야외책상, 골목길)

 

저자가 이 책에서 기록한 20가지 우리의 자화상이다. 건축사학자이자 건축가인 임석재의 책을 세 권 째 잡았다. 앞의 두 권은 「교양으로 읽는 건축」과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였다. 건축은 시대의 초상이라고 한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 미적 성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에 시선을 맞추었다.

저 성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 이 성에서 햇볕 사용법을 배웠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건강한 사치를 누리자 등등이다. 자기네 40층 아파트가 들어오면 온 도시가 푸른 도시로 변한다고 생떼를 쓰는 회사도 있다. 배용준이 나와서 내 여자한테는 이런 아파트를 사주고 싶다는 회사도 있다. 자기네 아파트에 살면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는 회사도 있다. 아파트 이름에 ‘올 래(來)’ 하나 넣고 여자의 미래가 바뀐다는 회사도 있다. 자기네는 아파트를 짓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짓는다는 회사도 있다. 가우디가 지은 성당 이름과 똑같이 지어놓고 자기네 아파트가 가우디의 명품과 같다는 회사도 있다. 아파트 담에 나무를 그려놓고 ‘푸르지오’라고 우기는 회사도 있다. 이걸 모방해 ‘푸르지요’라는 ‘짝퉁’도 생겼다.(113 ~ 114쪽) 아파트 광고 문구들이다.

천민자본주의 한국의 건축은 사람이 사는 공간보다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 땅은 부동산이 건축을 완전히 접수했다. 부동산은 주식과 더불어 가장 손쉽게 돈을 버는 수단이 되었고, 국민들은 모두 부동산 투기꾼이 되었다. 지배계층의 수탈기법이 고스란히 녹아 투기대상이 된 이 땅 건축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저자는 이처럼 정상궤도를 이탈한 건축현장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가차 없이 해부했다. '물신(物神)의 지배를 단군 이래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준 은인이라며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83쪽)

지난겨울 어머니는 한 달을 기침으로 고생하셨다.

“요즘 기침은 보름을 간다는구나”

어머니의 지나가는 소리가 셋째의 안일함에 부채질을 했다. 한 달이 다되어 가는데 어머니의 기침은 그칠 줄 몰랐다. 강도를 더해 밤잠을 이루질 못하셨다. 셋째는 누이동생에게 전화를 넣었다. 여자의 감이었을까. 그날 오후배로 어머니는 뭍에 나가셨다. 곧바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어머니의 병세는 기침감기가 아닌 천식이었다. 나흘을 혼자 밥해 먹으며 셋째는 7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때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치매로 요양원 생활을 하시다 저 세상으로 돌아 가셨다. 아버지는 유산으로 논 두 필지를 남기셨다. 절대농지였다. 그때 김포는 한강신도시라는 미친 개발바람이 불고 있었다. 땅을 처분하는 유산 상속으로 형제들이 모였다. 그런데 작은 땅이 없어졌다. 아버지가 치매로 제 정신이 아니었을 때 첫째는 땅을 처분했고, 그 돈으로 김포시청 부근 고급아파트를 샀다. 그리고 나머지 땅도 장남의 권리를 주장했다.

“더 욕심을 내시면 아파트까지 소송을 걸겠어요.”

셋째의 옹이박는 한 마디에 첫째는 뒤로 한 발 물러났지만,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인천 도금공장 노동자 둘째와 막내 딸 그리고 셋째아들과 어머니는 땅을 처분한 돈을 공평하게 분배했다. 어머니는 섬 생활하는 셋째가 모시기로 했다. 형제의 우애는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되었다. 세월은 흘렀고, 백부가 돌아가시자 형제는 5년 여 만에 장례식장에서 만났지만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첫째의 삶은 곤궁했다. 입술에 피딱지가 앉았다. 고급아파트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신축한 한강신도시 아파트도 파리를 날리는데 묵은 아파트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건설현장 일용노동자로 아파트 관리비를 대느라 허덕이고 있다는 풍문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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