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金洙映 全集 Ⅰ 詩
지은이 : 김수영
펴낸곳 : 민음사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년 5월 29일 탈고된 이 책 마지막 시 ‘풀’(297쪽)의 전문이다. - 달나라의 장난, 헬리콥터, 瀑布,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푸른 하늘을, 晩時之歎은 있지만, 허튼소리, 누이야 장하고나!, 巨大한 뿌리,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이 韓國文學史, 설사의 알리바이, 性, 풀 - 전집에 실린 174 시편 중 내가 알고 있는 시는 고작 14편이었다. 시편들 중 연작시는 新歸去來 9편, 꽃잎 3편, 敵 2편, 거리 2편, 長詩 2편이다. 연작시 중 1945년 25세에 쓴 ‘꽃(二)’와 ‘거리’는 분실되었다.
기침을 하자 / 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눈’ 中에서, 97쪽)
어째서 自由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 革命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푸른 하늘을’ 中에서, 147쪽)
諷刺가 아니면 解脫이다(‘누이야 장하고나!’ 中에서, 184쪽)
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
歷史는 아무리 더러운 歷史라도 좋다(‘거대한 뿌리’의 中에서, 225 ~ 226쪽)
귀에 익은 시 구절이다. 48살의 나이로 너무 일찍 세상을 뜬 시인 김수영(1921 ~ 1968)에게 나는 미안했다. 술독에 빠져 지내던 80년대 후반 학창시절. 주위 문청들은 시인 김수영에 열광했지만, 나는 내심 신동엽을 윗길에 놓았다. 나는 시인의 시집보다 60년대 김수영과 이어령의 ‘불온시’ 논쟁을 다룬 논쟁모음집을 먼저 잡았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노래한 동시대의 두 시인 중 나의 단순함은 모더니즘보다 리얼리즘에 경도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가장 묵은 시집 두 권은 창작과비평사의 93년간 초판 10쇄본 ‘신동엽전집’과 민음사의 94년간 초판 12쇄본 ‘김수영 전집’이다. 책을 손에 넣은 지 20년 만에 다시 펼쳤다. 책표지가 이채롭다. 육필원고를 바탕에 깐 시인 김영태의 시적인 캐리커처가 눈길을 끌었다. 편집은 시인의 누이동생 김수명 몫이었다. 동생이 없었다면 김수영에 대한 오늘의 평가도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동생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오빠의 작품을 찾고 정리하여 세상의 조명을 받게 했다. 돌이켜보니 시인 친구 함민복은 2005년 제 24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였다. 수상작은 문학세계사에서 나온 「말랑말랑한 힘」이었다.
시인 김수영은 왜 끊임없이 자유를 노래했을까. 일면을 알 수 있는 시가 ‘祖國에 돌아오신 傷病捕虜 同志들께’(31 ~ 35쪽)다. 시인은 1950년 8월 북한의용군에 징집되어 끌려갔다. 평남 순천에서 탈출에 성공했지만 북한군에 발각되어 총살 직전에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서울로 돌아왔으나 남한 경찰에 체포되어 인민군 첩자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아침이면 공용화장실 변기에 토막 시체들이 보이는 친공포로와 반공포로가 서로를 죽이던 거제도 포로수용소. 시인은 1952년 12월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이 생지옥을 겪으며 시인은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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