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지은이 : 하종강
펴낸곳 : 한겨레출판
이 책은 각박하기 그지없는 요즘 세상에서 만나기 쉽지않은 노동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모두 83개의 글꼭지가 6부에 나눠 실려있는 짧은 글들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코끝이 시큰거리고, 목울대가 울컥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남자가 창피하게 이래서는 안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좀더 생각하니 사내대장부가 쉽게 눈물을 보이면 안된다는 관념은 이 땅이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철두철미하게 적용되는, 인간미가 없는 전장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소외, 억압, 수탈당하는 풀뿌리 민중들의 고통스런 삶에 슬픔을 느끼고 분노하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도리이지 않은가.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남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동기생들보다 일찍 승진한 사람들이 인생의 승리자가 됐다는 자부심을 느낄지언정 아무 잘못도 없이 밥을 굶어야만 하는 아이들의 고통 때문에 잠못 이루며 가슴 아파 해본 적이 없다면, 과연 정상적인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할수 있을까?"
책 이미지는 기름때에 절은 목장갑의 검지에 새싹이 돋아 나오는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서 안산공단 화공약품 노동자 시절의 기억을 들추어냈다면, 오늘은 가리봉동 벌통방 시절의 회한을 되새긴다. 그 시절 나는 기술만 익히면 대공장을 뚫을수 있다는 희망으로 고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잔업까지 해봐야 초보 견습공은 한달 봉급으로 고작 50여만원 안팎의 돈이 쥐어졌다. 마찌꼬바는 소규모 영세업체를 말한다. 문래동 남부지원 앞 블록에는 선반과 밀링을 3 ~ 4대 들여놓은 소규모 철공소가 500여개나 밀집되어 있었다.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지름길이었다. 내가 처음 한 일은 설계도면을 보고 탭으로 구멍을 뜷는 손쉬운 작업이었지만, 목장갑을 낀 손아귀에서 왜 그리 금형은 자꾸 빠져 나가는지. 봉급을 타면 나는 우선 한달 왕복 토큰과 싸구려 솔담배 한 보루를 구입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가리봉 시장에서 됫발 쌀과 포기김치를 샀다. 살림살이라고는 소형 중고 냉장고와 밥통이 전부였다. 벌통방이란 밖에서 보면 한 채의 집이지만, 대문을 들어서면 한뼘 밖에 안되는 안마당을 10여개가 넘는 방들이 둘러싼 가옥구조다. 말그대로 그 시절 밑바닥 사람들의 가장 열악한 거주처였다. 어느날 공장에서 돌아오니, 주인 아주머니가 달려왔다. "낮에 도둑이 들었는데, 잡혔다고, 경찰서에 들르라고 연락이 왔다고."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나는 난처했다. 안 갈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좀도둑은 방문에 걸린 허술한 자물통을 가터로 뜯고 토큰과 담배를 훔쳐갔다. 경찰의 취조 심문에 파김치가 된 도둑이 오히려 측은했다. 선처를 부탁하고 나는 토큰과 담배를 되찾았다. 경찰서 정문을 나오면서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의적을 떠올린 것은 좀도둑의 속좁은 염치 때문이었을까. 고교을 졸업하고 나보다 한달 먼저 들어온 견습공의 큰 덩치를 떠올리며 가리봉 오거리 책방에 들러 '전태일 평전'을 집어 들었다. 올바르게 세상을 살아가는 그 길에서 나는 비겁하게 내려섰다. 요즘 나는 부끄럽게도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들의 걸림돌이 되지는 말자는 자기 다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