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직선들의 대한민국

대빈창 2008. 11. 20. 09:32

 

 

책이름 : 직선들의 대한민국

지은이 : 우석훈

펴낸곳 : 웅진지식하우스

 

80년대 학창시절, 인문학도로서 나의 사회과학 인식 능력은 일천하기 그지 없었다. 혁명적 에너지가 분출하던 그 시절의 젊음은 누구나 통과의례 절차로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한다. 하지만 못내 미진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이 땅의 현실을 좌파적 시각에서 조감할 수 있는 경제학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목마름을 달래주던 유일한 지식인이 지금은 타계한 정운영 선생이었다. '하드코어적 극우'가 설치는 이 땅에서 진보 경제학자로 평생을 살았던 선생은 몇 년 전 마지막으로 '자본주의 경제 산책'과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를 우리 앞에 물음표처럼 던져 놓고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내가 '하드코어적 극우'라는  표현을 쓴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경제학계의 상아탑인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선생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학문적 진실을 펼치기에 조국은 동토의 왕국이었다. 유신정권이라는 극단적 폭압기제아래, 조국을 찾은 선생에게 주어진 과제는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민방위 훈련 날 광화문 네거리에서 교통을 통제하는 엄청(?)난 임무였다. 눈물겹지 않은가. 이땅의 꽉 막힌 매카시즘만 욱일승천하던 블랙코미디같던 그 시절이.

그렇다고 이 땅의 현실이 많이 나아졌다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 민주화의 제단에 수천 명이 목숨을 던졌지만, 고작 4 ~ 5년마다 주기적으로 표를 던질 수 있는 권리를 무슨 대단한 민주주의적 성취를 이룬 것처럼 착각하기 전에는. 이후 소비에트와 동유럽이 붕괴되면서 이 땅의 진보세력은 일대 사상적 카오스에 직면한다.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재 극우보수정당의 핵심인물은 그 시절 소위 진보정당인 민중당을 이끌던 사람이었다. 또한 뉴라이트의 핵심 인사(?)는 인민노련(인천지역 민주노동자 연맹)의 운동권 핵심 인사(?)였다. 제1세계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원래 극우꼴통이라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이땅의 뉴라이트는 정말 기묘하게도 386세대를 대표하는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우글거린다. 80년대에는 적이 분명하게 눈앞에서 구분되었다. 20년이 흐른 지금, 세계화를 앞세운 신보수주의 앞에 각 개별 국가들은 추풍낙엽처럼 우경화, 보수화의 길로 들어섰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다행히도 비판적인 두 명의 경제학자를 새로 찾아냈다. 그들이 읽는 천민자본주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장하준과 '88만원의 세대'의 우석훈 교수다. 진보(?)주의자들이 오십보백보 신보수 진영에 투항하는 작금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그 답을 모색해 보자. 저자 우석훈은 어떤 인물일까. 자칭 'C급 경제학자'다. 그 이유를 A급은 이론을 세우고, B급은 이론을 수정하는 반면, C급은 이론을 적용한다는 의미에서 건설·토목 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재단하는 경제학자의 시각을 견지하려는 자기다짐인 것이다. 현재 한국 경제의 생태적 전환에 대해 연구하는 저자는 도서관이 번듯한 나라가 선진국이라 믿으며, 공공도서관 민영화에 반대한다. 또한 농민들이 행복해야 복지국가라고 생각하며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욕심을 버려야 삶이 명랑해진다는 자기철학에서 연유한다.

지난 달 경남 창원에서는 세계환경회의라고 할 수있는 '람사르 총회'가 열렸다. 그런데 웃기게도 청계천 복원의 경험을 살려 대한민국의 훼손된 습지와 하천을 되살리겠다고 견강부회하는 국제적 개망신을 자초했다. 정말! 한국적인 겉치레에 충실한 총회로 전락한 것이다. 청계천은 거대한 인공어항이지, 생태복원이 아니다. 전기모터로 한강물을 끌어와 수도꼭지를 트는 수족관이다. 진짜 청계천은 콘크리트 밑에 거대한 똥물 집수구로 한강에 흘러 내린다. 그러기에 비만 오면 서울의 오염물질이 지대가 낮은 인공어항인 청계천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방생(?)한 물고기가 떼죽음 당한다. 그리고 또다른 물고기를 죽음으로 내모는 방생을 한다. 이 문제는 청계천이 중랑천처럼 제대로 복원될 때까지 반복돨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의 천박한 미적 감각이다. 즉 콘크리트에서 외형적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도착증 환자들이다.

그럼 좀더 나아가 '직선'의 아름다움을 살펴보자. 뉴타운 계획이 알려지자, 집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다. 현실은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의 10%만 입주하고, 나머지는 더 나쁜 주거환경으로 쫒겨날 수밖에 없는데도. 신도시 건설은 땅부자인 토호의 배때기만 불려 주는데도 순박(?)한 주민들은 토지를 파는데 동의한다. 이러하기에 한국의 도시화율은 전무후무하게 95%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왜 이런 부조리한 일이 이 땅에서는 매일 벌어질까. 도저히 경제적 이성이나 상식으로 설명될 수가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저자는 여기서 '건설미학'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현재 한국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건설·토목공화국이 유지, 강화될 수 있도록 하는 시대정신이 건설미학이라는 것이다. 이 미학이 투기와 결합하여 청계천을 찬양하고, 집없는 사람들이 뉴타운 건설을 환영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대한민국인가? '직선들의 대한민국'의 부제는 '한국사회, 속도, 성장, 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다. 책 이미지를 다시 보니, 표제마저 불도저가 밀고나가 글자들이 기우뚱거리고 받침도 긁혔다. 그리고 일직선의 아스팔트 도로에 불도저가 멈춘 자국이 버짐처럼 또렷이 독자의 시야를 가로 막는다. 한마디로 이 땅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건설미학'이 '생태미학'으로 대체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올바른 결론이다.

 

p. s 지금 대한민국은 '청계천 복원'의 경험을 살려 전 국토를 밤낮으로 '업'하는 중이다.  그것이 바로 말 같지도 않은 '4대강살리기'라는 사업이다. 이게 도대체 말인가. 막걸리인가. 청계천의 인공어항화로 자신감을 얻은 토건세력은 권력까지 쟁취했다. 그리고 이 땅의 젖줄인 4대강을 '강에서 인공수로'로 복원(?)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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