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신의 역사 Ⅰ· Ⅱ
지은이 : 카렌 암스트롱
옮긴이 : 배국원, 유지황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나의 어린 시절 교회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기억된다. 국민학교 4 ~ 5학년이었던가. 동네 꼬마들은 떼를 지어 우르르 종소리가 출발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뜀박질을 했다. 숨이 턱까지 찬 아이들은 무명실에 꿴 강냉이를 목걸이처럼 걸었다. 새끼손가락 마디에 반지모양 강냉이를 꿰어 하나씩 빼먹는 재미에 교회 문턱을 넘나든 것이다. 예배를 드렸는지 기도를 올렸는지 지금 전혀 기억이 없다. 성탄절을 앞두고 열린 그림 그리기에서 등수에 들어 부상으로 공책과 연필을 탔다. 지금도 그림 내용은 뚜렷하다. 교회 앞 높다란 종탑 앞을 지나 교회 현관으로 향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까까머리 중학생이 된 이후 신앙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긴 어린시절 강냉이 목걸이가 탐이 난 것이지,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후 가족들은 읍 소재지 성당에 나가 영세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지만, 나는 무신론(?)자를 여적 고집하고 있다.
나는 사랑의 실천보다는 예배의식을 중시하는 이 땅의 주류신앙을 믿을 수 없다. 계명을 따르지 않으면 영원한 파멸 밖에 없다고 협박하고 응징하는 신을 믿을 수는 없지 않은가. 민중의 삶은 비인간적 착취와 억압, 소외로 고통 받고, 신조차 인간의 욕망을 위해 조작, 남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기에 종교는 힘을 잃고 인간 삶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더욱이 20세기 말부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은 문자적 성서 이해와 배타적 신앙관을 무기로 하는 '근본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기서 신을 강조하는 근본주의는 다름아닌 인간중심의 신앙이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적 현상들을 종교적 신앙의 중심부에 올려놓은 일종의 우상숭배'다. 근본주의는 인류애 사상을 부정하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으로 과격하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9·11테러, 아프카니스탄·이라크 침공, 가자지구 점령 등``````.
마지막 책장을 덮자, 천성산 꼬리치레도롱뇽과 지율 스님의 단식, 새만금 갯벌 매립을 온 몸으로 반대하며 삼보일배를 했던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 생명평화 탁발순례에 나선 도법스님의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저자 암스트롱은 '21세기에도 힘을 잃지 않고 중요한 종교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신앙은 신비주의적 신앙'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우주·자연에 대한 신비는 다름아닌 생태주의 사상과 연결된다. 자연이 죽으면 따라서 인간도 죽고, 당연히 신도 없다. 80년대 라틴아메리카가 낳은 민중 신학이 고달픈 민중에 대한 구원신앙이었듯이, 지구온난화라는 절체절명의 환경재앙은 생태신앙을 낳았다. 이 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