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사과를 내밀다 / 기룬 어린 양들
지은이 : 맹문재
펴낸곳 : 실천문학사 / 푸른사상
사과를 내밀다 ; 2012년 ; 4부 54편, 오연경 - 거룩한 속물의 산수(算數)
기룬 어린 양들 ; 2013년 ; 5부 65편, 장성규 - 이것이 왜 시가 아니란 말인가?
근 일주일 간 맹문재 시집 두 권의 120여 시편을 읽었다. 시집은 시인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시집이었다.
나는 완전에 가까운 그의 결단을 / 지천명처럼 믿네
그에게는 하루 14시간의 작업이나 / 단수(斷水)같은 월급이 / 문제가 아니었네 / 위장병이나 / 화장실조차 막는 금지도 / 문제가 아니었네
바늘로 졸음을 찌르며 / 배고파하는 어린 여공들에게 / 풀빵을 사준 일이 / 문제였네
내게 인정으로 배수진 치는 법을 /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
최후까지 알려줄 것이네
「기룬 어린 양들」을 여는 첫 시 ‘전태일’(13쪽)의 전문이다. 이 시집은 전태일 이후 김대중 정권까지 노동운동 과정에서 세상을 뜬 노동자들의 삶을 65편의 시로 기록했다. 시편들에서 세 편 만이 열사 두 분의 이름이 나란하므로 시집은 1970년대 이후의 노동 열사 68위(位)를 모셨다. 시편들은 10행 안쪽의 짧은 시로 열사들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한국자본주의 발전은 성장 신화의 제물로 바쳐진 노동자들의 참혹한 사실들을 애써 숨겼다. 국가와 자본 권력에 저항한 노동자들의 희생이 우리들에게 조금 더 낳은 삶을 살게 만들었다. 시편들마다 이 땅 노동열사들의 처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인 백무산은 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1970년대 이후 이 땅의 노동 열사 68위(位)의 처절한 비문(碑文)이 아닌가!”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인 맹문재는 현재 대학교수다. 그는 한때 포항과 광양에서 시뻘겋게 끓어오르는 쇳물로 밥을 산 공장노동자였다. 그러기에 그의 시들은 ‘카키색(노동자)’와 ‘체면(대학교수)’ 사이에서 허둥거렸다. 「사과를 내밀다」 시편을 읽어나가면 젊은 날 투신했던 삶과 현재의 안일한 일상과의 괴리에서 오는 자기 고백의 시들이 눈을 아프게 찔렀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고자 애쓰는 ‘착한 시인’은 반성의 힘으로 안일에 젖은 일상에 새롭게 길을 내고 있었다.
나는 시를 진실하게 썼다고 주장할 테지만 / 노동자의 길을 철저히 걷지 못했기에 / 시집은 불태워지지 않을 것이다(‘분서’ 中 2연 / 42쪽)
나도 작업복을 입은 채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저렇게 운 날이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 날을 바라는 월급쟁이들이 소 떼처럼 고향으로 몰려가는 추석 전날의 밤이었다(‘그에게 전화를 걸어주고 싶었다’ 中 5연 /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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