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엄마의 런닝구

대빈창 2015. 10. 12. 07:00

 

책이름 : 엄마의 런닝구

엮은이 : 한국글쓰기연구회

펴낸곳 : 보리

 

어린이 시모음집을 엮은 〈한국글쓰기연구회〉는 1983년 8월 20일 47명의 초·중·고·대 선생님들이 첫 모임을 가지면서 창립하였다. 모임의 첫 회장은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이었다. 선생은 모임의 목표를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했다. 이는 아이들에게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쓰는 가운데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을 말했다. 모임은 정회원 150명, 일반회원이 900명에 이르렀고, 회보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의 발행부수는 1500부다. 연구회는 2006년 6월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표지그림은 옛 그림 민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일곱 개의 나뭇가지에 이파리가 빼곡한데 새 여섯 마리가 가지에 앉거나, 내려앉거나, 날아오르고 있다. 그린이 정승각은 버림받은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교훈을 일러 준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본문의 그림들은 경북 청도 덕산 초등학교 이호철 선생님이 가르친 아이들의 그림이다.

〈한국글쓰기연구회〉 회원 선생님들이 지도한 아이들이 쓴 시를 모아서 엮은 시모음집은 어린이들이 가슴으로 느낀 것, 온 몸으로 겪은 참 된 시들을 모았다. 시집은 1장 ‘산에서 들에서 밭에서’ - 30편, 2장 ‘함께 사는 동물들’ - 38편, 3장 ‘나무야 풀들아 꽃들아’ - 16편, 4장 ‘우리 집 식구들’ - 30편, 5장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놀고’ - 47편, 모두 161편이 실렸다. 1974년에 쓰인 경남 통영 여차 초등 5학년 김민년의 「아가 밥」에서 1994. 7 . 서울 구일 초등 2학년 김수빈의 「갯벌」까지 20년 간에 걸친 어린이 작품들이다.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 한 개 사라 한다. / 엄마는 옷 입으마 한 보인다고 /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 아버지는 그걸 보고 /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 너무 째마 걸레로 못 한다 한다. / 엄마는 새걸로 갈아 입고 /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표제작 「엄마의 런닝구」(146 ~ 147쪽)의 전문이다. 여기서 ‘대지비’는 ‘대접’의 사투리다. 경북 경산 부림 초등 6학년 배한권이 1987. 5.에 썼다. 물자가 부족했던 가난한 나의 세대 어머니들의 몸에 밴 근검절약이 잘 형상화된 시다. 대학시절, 나는 다락방 한 귀퉁이에 금서(禁書)를 감추었다. 어느 날 쌓여 있던 종이박스를 뒤적이다 그렁그렁 솟구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글을 모르시는 어머니는 사남매를 키우면서 옷가지들과 교과서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종이상자에 쟁여 다락방에 차곡차곡 쌓아 놓으셨다. 나의 어린 시절 옷들은 한마디로 누더기였다. 닳고 단 원단보다 기운 자투리 조각들의 부피가 더 컸다. 가난했던 어머니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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