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쇼쇼쇼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지은이 : 이성욱
펴낸곳 : 생각의나무
근래 잡은 묵은 시집 두 권은 안도현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과 故 윤중호의 『금강에서』다. 두 시집의 해설은 문학평론가 故 이성욱이 맡았다. 마흔 둘이라는 젊은 나이로 2002년에 세상의 끈을 놓은, 나의 뇌리에 뒤늦게 접속된 평론가 이성욱의 저서를 찾았다. 유고집 네 권이 한꺼번에 나온 해가 2004년이었다. 문화평론집 『20세기 문화이미지』, 문학평론집 『비평의 길』, 근대문화 연구서 『한국 근대문학과 도시 문화』 그리고 이 책이었다. 나는 우선 2011년 부도난 출판사 〈생각의나무〉에서 나온 문화평론집 『쇼쇼쇼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를 중고서적을 통해 급하게 손에 넣었다. 낙도에서 부도난 출판사의 품절된 책을 손에 넣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책은 저자가 기록한 70년대의 흔적들이다. 나는 지은이와 같은 세대로서 책갈피를 넘길 적마다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1부는 문화적 풍경 - 영화, 대중음악, 스포츠, 섹슈얼리티, 놀이에 관한 이야기다. 80년대 초 지방 소도시 극장의 개봉영화 〈람보 2〉를 기립박수를 치며 나는 연이어 두 번 보았다. 하지만 미제국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저자는 대중가요사에서 요람으로 ‘거짓말이야’, ‘님은 먼 곳에’의 김추자를 꼽았다. 하지만 나는 ‘그건 너’, ‘한잔의 추억’의 이장희의 멋진 콧수염에 매료되었다. 요즘 나의 18번지는 그룹 《국카스텐》이 리메이크한 ‘한잔의 추억’이다.
축구 - 이회택, 김호, 김정남, 박이천, 이세연과 킹스컵, 메르데카컵 / 프로복싱 - 홍수환, 유제두, 염동균, 김성준, 박찬희, 김태식 / 고교야구 -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기. 어린 나의 영웅들이며 정겨운 이름들이다. 나는 80년대 초반 대학에 발을 들였다.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 - 스포츠, 섹스, 스크린을 경멸하면서 82년 개막한 프로야구와는 담을 쌓았다. 하지만 고교 3년 동안 봄·가을 소풍을 동대문야구장으로 갔을 정도로 나는 야구광이었다. 봄 소풍 때 청룡기, 가을 소풍 때 황금사자기가 열렸다. 야구에 열광하며 관중석에서 륙색에 메고 다니며 팔던 소주병에 담긴 독한 밀주로 나는 술을 배웠다. 병뚜껑으로 한잔만 마셔도 입에서 화염(?)이 내뿜어지던 독한 화학소주. 야구장으로 소주병이 날아다녔다. 나는 동대문운동장 화학소주의 짜릿한 맛을 일찌감치 몸으로 체득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군홧발 정권에 화염병과 짱돌로 대들었다.
2부는 한국 대중문화 계보를 개혁(1900 ~ 1945), 반공(1950년대), 검열(1960 ~ 70), 계급(1980), 소비(1990)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대중문화의 역사를 분석했다. 3부는 미아리 방석집, 카바레 춤바람, 경마장, 신사동(위락업소)을 통해 근대적 기억을 되살렸고, 4부 ‘그때 그 시절’에서는 금기 - 장발·미니스커트 단속, 기타 압수, 금지곡 남발, 마광수·장정일 외설소설(?)에 대한 탄압 등. 소리에 대한 추억으로 통금 사이렌, 쓰레기차 종소리, 찹쌀떡·메밀묵·재첩국 사라는 소리 등. ‘고교생들이 교복을 자신의 스타일을 조형하는 공간’으로 기를 쓰는 것도 ‘제한되고 속박된 조건 속에서 자신의 자발적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하고 표현하는 지평’(288쪽)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 말 나의 고교시절은 방공이 국시인 나라답게 교복대신 교련복이 상시복이었다. 바지 아랫단은 나팔이나 쫄졸이가 유행이었다. 교련선생이 면도날로 베어 버려도 우리는 기를 쓰고 교련복 허벅지에 건빵을 달았다. 그리고 하얀 런닝화 뒤축을 꺾어 신었고, 교모 챙은 정확히 반을 꺾었다. 그때 그 시절 우리들의 정체성 확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