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
지은이 : 최승호
펴낸곳 : 난다
핑크색 바탕에 코뿔소 형상의 스티커가 표지 그림이다. 문학평론가의 해설이나 발문이 없다. 그 흔한 표사마저 없다. 〈난다詩방〉 1호로 출간된 최승호의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다. 〈난다〉는 문학동네의 임프린트다. 문학동네 시인선 1호도 최승호의 『아메바』였다. 난다시방은 세련된 개성과 자유로운 시를 담겠다는 포부를 내세웠다. 다양한 형식의 새로운 시집으로 최정례 시인이 옮긴 제임스 데이트의 『당나귀들의 도시』와 김민정의 그림동시집 『달걀도 사랑해』를 근간에 내놓겠다고 했는데 여적 감감무소식이다. 햇빛에 바래 책등이 허옇다. 시집을 손에 넣은 지 2년이 흘렀다. 이 시선은 한권만 나오고 단명한 것인지 모르겠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총 56편의 시가 담겼다. 산문과 짧은 운문을 비빔밥처럼 자유롭게 엮은 실험적인 시들이 눈에 뜨이는데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몽타주 기법을 차용했다고 한다. 몽타주 기법은 서로 다른 이미지와 형식을 나란히 배치하는 기법이다. 생태환경에 유다른 관심을 가진 시인답게 폭주하는 현대문명과 욕망의 과잉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가득하다. 시편들을 읽어나가다 나의 눈길은 여기서 머물렀다.
해변밍크(1880년 절멸) / 산서사슴(1900년대 절멸) / 긴귀키트여우(1910년 절멸) / 웃는올빼미(1914년 절멸) / 극락잉꼬(1927년 절멸) / 주머니늑대(1933년 절멸) / 사막쥐캥거루(1935년 절멸) / 베르데왕도마뱀(1940년 절멸) / 웨크뜸부기(1945년 절멸) / 황금두꺼비(1990년 절멸) / 바바리사자(1992년 절멸)
「바보들」(40 ~ 41쪽)의 2연이다. 낯익다. 그렇다. 이 멸종동물들은 도요새문고 1 으로 나온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에 봤다. 무릎을 탁! 쳤다. 오래전 나는 기를 쓰고, 13년이 지난 품절된 시인의 시선집을 중고서적을 통해 손에 넣었다. 『코뿔소는 죽지 않는다』는 도요새문고 3 였다. 마지막은 「대도시」(58쪽)의 전문이다.
포르노 배우들이 카마수트라를 흉내내듯이
낙타가 제 뱃속의 물주머니를 / 장터 좌판 위에 꺼내놓고 / 사막에 드러누워 손님을 목마르게 기다리듯이
살아야 한다면 죽음에 색칠하고 / 몸이라도 팔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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