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차남들의 세계사

대빈창 2015. 11. 30. 05:47

 

 

 

책이름 : 차남들의 세계사

지은이 : 이기호

펴낸곳 : 민음사

·

박정희 대통령 피격사건 / 보안사령관 / 전두환 장군 / 장충체육관 대의원 간접선거 / 잠실체육관 대통령 취임식 /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 / 워커 주한미국대사 / 작전지휘권 / 지미 카터 / 도널드 레이건 / 부통령 조지 부시 / 삼청교육대 / 국가보안법 /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부미방) / 지학순 주교 / 최기식 신부 / 원주 경찰서 / 문부식·김은숙·김현장 /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 / 장영자·이철희 사기사건

 

책을 열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들이다. 1980년 보안사령관 소장 출신 대머리 전두환은 체육관 대의원 선거를 통해 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광주를 피의 학살로 물들이며 정권을 찬탈한 군사독재 권력 휘하에서 검찰과 경찰은 과잉충성 경쟁에 몰입했다. 일명 ‘빨갱이 만들기’였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학생들로 감옥은 초만원이었다. 감옥에서 만난 대선배 사회주의자 비전향장기수들의 해방공간 투쟁이 소설로 형상화되었다. 대표적 작품은 김하기의 『살아있는 무덤』과 권운상의 『녹슬은 해방구』 그리고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이었다. 고교를 막 졸업한 촌놈이었던 나는 그때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국풍 81〉에 가고 싶어 얼마나 안달복달이었던가. 10여년후 나는 문래동 마찌꼬바에서 쇳가루로 밥을 샀고, 가리봉오거리 벌통방에 사는 노동자가 되었다. 진정추 시절, 주위의 동지들 열의 아홉은 국가보안법 출신으로 군면제자였다. 국가보안법으로 반년만 빵에 다녀(?)오면 엄혹한 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동지들이 얄미우면서 부러웠다. 돌대가리 전두환의 작품이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동자인 문부식과 김은숙은 존경하는 천주교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를 찾아와 4월 1일에 자수했다. 하지만 빨갱이 만들기에 혈안이 된 안기부와 경찰은 가방끈이 짧아 한글을 모르는 고아원 출신 택시기사 나복만을 고문으로 간첩을 만들었다. 주인공 나복만은 어느 새벽 자전거를 탄 신문팔이 소년과 가벼운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착해빠진 나복만은 양심에 찔려 스스로 경찰서를 찾았다. 부미방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는 피곤에 절어 주인공 택시기사를 사건 연루자 리스트에 올렸다. 지옥 같은 고문실에서 풀려 나오면서 나복만은 택시 조수석에 탄 안기부요원 정남운을 길모퉁이 전봇대에 들이박아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30년째 수배자로 도피중이다. 스물아홉에 수배가 떨어졌고 환갑이 지났지만 여전히 잠수 중이었다.

표제이자 마지막 문장 ‘차남들의 세계사’에서 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이 땅의 현실을 떠올렸다. 또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도 함께. 작가는 ‘차남들의 세계’를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을 수도 없는 세계,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 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179쪽)라고. 표지를 거의 덮는 부피 큰 띠지의 방향신호에서 좌회전 표지가 빨갛게 도드라졌다. 이 땅의 ‘빨갱이 사냥’은 여적 진행 중이다. 부미방 사건 김은숙의 타계 소식을 접했다. 고인의 가시는 길을 볼 수 없어, 노잣돈만 놔드렸다. 가슴 가득 바닷물이 밀려들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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