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지은이 : 최원식
펴낸곳 : 한길사
한국 풍수의 대가 최창조 교수의 『한국의 풍수지리』, 『땅의 논리 인간의 논리』, 『땅의 눈물 땅의 희망』과 선조들의 생태 지혜를 밝힌 논문집 『한국의 전통생태학』, 『한국의 전통생태학 2』를 거쳐 부피 두꺼운 『사람의 산 우리 인문학의 산』을 보름동안 서서히 책갈피를 넘겼다. 이 책은 스스로 산가(山家)를 자처하는 저자의 20년간 산 공부가 집대성되었다. 사진과 자료가 639쪽에 걸쳐 한가득했다. 우리 국토는 70%가 산으로 한국인에게 산은 자연 그 자체다. 우리에게 산은 생명을 낳는 뿌리이고, 죽어 돌아갈 곳이다. 오죽했으면 산소(山所)였을까.
저자는 천산(天山)·용산(龍山)·조산(造山)의 세 개념으로 한국인의 산 관념의 변천을 설명했다. 단군신화를 비롯한 고대국가의 건국신화에서 산은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숭배의 대상이던 산이 사람살이의 요긴한 환경으로 인식되면서 산은 용(龍)으로 파악되었다. 용의 형상을 한 산의 품에 안겨 생활하던 사람들은 이제 조산(造山)도 만들었다. 흙을 쌓아 낮은 둔덕을 만들고 그 위에 소나무를 심거나 돌무더기를 탑 모양으로 쌓은 것이 조산이었다. 내가 사는 강화도의 양도면의 한 행정구역명은 조산리이고, 강화읍 터미널 입구 사거리의 갈비집 상호는 〈알미골〉이었다.
이 땅의 산은 ‘사람의 산’이었다. 경남 김해의 임호산(林虎山)은 험상궂은 호랑이 형상으로 고을을 보고 걸터앉았다. 산의 흉한 몰골을 제압하려 주민들은 호랑이 아가리 부위에 절을 지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전 잡았던 최창조 교수의 달마산 미황사에 얽힌 한국적 풍수관을 떠올렸다. 전남 해남의 달마산은 정상 부근은 골산이고, 아랫도리는 육산이다. 산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 돌과 흙이 만나는 산 중턱에 미황사를 앉혔다는 설이다. 얼마나 인간적인 풍수설인가.
“백두산을 머리로 하여, 조선의 산맥은 큰 줄기 하나白頭大幹와 14개의 갈래진 줄기로 보았다. 14줄기 중에서도 강을 끼고 있는 것은 정맥正脈, 산줄기 위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은 정간正幹으로 분류하여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체계화했다.”(232쪽)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는 세계 유일의 족보식 산지 서술 체계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었다. 내 책장의 묵은 책 중에 『산경표를 위하여』와 『태백산맥은 없다』가 어깨를 겯고 있다. 산악인 조석필이 산경표를 풀이한 대중서다. 나는 그 시절 『산경표』에 크게 매료되었다. 강화도농경문화관 현관로비 기둥의 강화도 지질도를 산경표식으로 설명했다.
어떤 산이 명산이냐고 묻는 물음에 저자는 우문현답(愚問賢答) 했다. “ 자기 집의 앞산과 뒷산이 가장 좋습니다. 한국에는 어디에나 명산과 명당이 있다는 말이 있어요. 가까이 있어서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 좋은 산이죠.” 그렇다. 리뷰를 긁적이기 전 나는 해발 146m의 낮은 봉구산자락을 휘감는 옛길을 느긋하게 산책하고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