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멍게

대빈창 2015. 11. 27. 05:23

 

 

책이름 : 멍게

지은이 : 성윤석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고등어 / 대합 / 호루래기(오징어 새끼) / 전복 / 가리비 / 문어 / 오징어 / 멍게 / 상어 / 멸치 - 메가리 / 해파리 / 해삼 / 갈치 / 아귀 / 고래 / 적어(빨간고기, 아까라기, 눈볼대) / 임연수 / 전갱이 / 은대구 / 노가리·코다리·명태·동태·황태·북어 / 가자미 / 방어 / 돔 / 게 / 청어 / 가오리 / 주꾸미 / 참조기 / 조개 / 꽁치

 

 

수협어판장이나 수산물시장에 진열된 바닷물고기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시편들에 등장하는 시제다. 그렇다. 시인은 마산 어시장의 일용잡부였다. 시집은 5부에 나뉘어 74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오형엽의 「체험의 강도와 실험의 밀도」다. 과작의 시인이었다. 1990년 등단한 시인은 시업 25년 동안 시집 세 권이 전부였다. 곡절 많은 시인의 인생역정이 오히려 감동적인 서사詩로 다가왔다.

시인은 지방신문 기자, 마산시청 시보담당 6급 공무원, 교육출판 회사에 몸담기도 했다. 시인은 시흥화학단지에서 화학기술 바이오 벤처사업가로 잘 나갔다.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부도가 나서 호구지책으로 서울시립묘지 관리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때의 체험이 두 번째 시집 『공중묘지』(민음사, 2007년) 로 형상화되었다. 사업 실패로 알거지가 된 시인은 2013년 5월 경남 마산으로 내려갔다. 마산은 20대 대학시절을 보냈고, 처가가 있는 남해 바닷가였다.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린다. 어물전에선 / 머리 따윈 필요 없어. 중도매인 박 씨는 견습인 내 안경을 가리키고 /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질 말길. 거대한 입들이여 / 허나 지금은 조용하길. 일몰인 지금은 / 좌판에 앉아 멍게를 파는 여자가 고무장갑을 벗고 저녁노을을 / 손바닥에 가만히 받아보는 시간

 

표제시 「멍게」(17쪽)의 전문이다. 낙향 하면서 1.5톤 트럭으로 가진 책을 모두 고물상에 넘겼다. 그렇게 문학을 버렸다. 항구도시 마산에서 술만 퍼마셨던 시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어시장의 생기였다. 시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부둣가를 누볐다. 수산물도소매를 하는 처가댁에서 냉동 생선상자를 배달하거나 냉동생선을 손질하여 밥벌이를 했다. 그런데 책을 몽땅 버린 시인에게 어시장 사람들이 전하는 바다 이야기가 문학적 영감을 불러왔다.

 

月明期라 했나. 달도 너무 밝으면 고등어들은 흩어지고 / 수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했다.(「고등어」 中에서, 12쪽)

 

고등어는 달이 너무 밝고 바다가 따뜻해지면 / 살이 마르고 입술이 부르튼단다 고등어는 춥고 / 달이 어두운 저편에서 바다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 / 살을 찌우지(「고등어2」 中에서, 54쪽)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열네 시간을 일하며 저녁때까지 마음에 남아있던 시어들을 냉동창고 앞 사무실에서 주문서 여백, 영수증 뒷면, 생선상자 귀퉁이에 긁적였다. 간기어린 바다 내음과 비린내만 가득했던 호주머니에 시가 적힌 종이뭉치들이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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