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대빈창 2015. 11. 25. 02:45

 

 

책이름 :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지은이 : 이명원

펴낸곳 : 새움

 

꼭지 「비평의 길, 비명의 길」은 비평가 故 이성욱의 『리베로의 비평』에 대한 짧은 독서 에세이다. ‘그의 사후 출간된 네 권의 저작들은 유복자의 운명으로 남았다.’(242쪽) 이 구절을 접하면서 나는 이 책의 초판본이 2004년에 출간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당대 문화비평계의 ‘뾰족한 지성’이었던 고인은 안타깝게 마흔 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했고, 2004년 네 권의 책이 사후 출간되었다. 젊은 평론가 이명원은 나에게 문학계의 태두 김윤식의 표절을 제기한 ‘사제 카르텔 논쟁’으로 먼저 떠 올랐다. 이후 저자의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이 책이 일곱 번째다. 도대체 초판본을 손에 넣기 위해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던가. 연두색 표지의 초판본은 품절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온라인 중고서점에 들어가 가트에 책을 넣다 빼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묵은 책을 잡을까 아니면 개정판을 기다려야 할까. 우물쭈물하는 사이 10년 만에 책이 가득 쌓인 책장을 표지그림으로 새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반가웠던가.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책은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 ~ 4장의 ‘산책자·여행자·사색자·비평가의 책읽기’는 80여권의 짧은 독서에세이이고, 5장 ‘물음표와 느낌표’의 22꼭지는 문학과 출판에 대한 뒷얘기를 담았다. 까칠한(?) 할 말은 하는 젊은 평론가의 날선 메스는 짧은 독서에세이라고 비켜 갈 수 없었다. 작가의 권위나 기왕의 문학적 성취에 얽매이는 법 없이 ‘성역 없는 비판’은 거침이 없었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명확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와타샤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은 ‘하이틴 수준의 소설로 그 연배들에게 킬링타임용으로 적당한 작품’으로. 황석영의 『심청』은 진보적 작가의 여성의식이 섹스 판타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강남몽』은 뒤틀린 인간들의 사회생태학을 보여주는 ‘지지할 수 없는 문제작’일 뿐이다. 이문열의 『선택』과 『아가』는 마초적 여성관으로 편협한 생식 신비주의에 머물렀고, 『신들메를 고쳐 메며』는 기회주의적 문사를 여실히 드러냈다. 근래 가장 잘 나가는 작가 김훈의 문체는 ‘언어적 페티시즘’에 불과했다. 주례사 비평이 난무하는 문단에서 저자의 살아있는 목소리는 독자의 답답한 숨통을 튀어 주었다. 나는 그 맛에 저자의 책을 즐겨 찾았다. 그렇다고 저자의 목소리가 날선 뾰족함만 난무한 것이 아니었다. 고종석의 에세이는 한 번도 저자를 배신하지 않았고, 공지영의 『별들의 들판』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공선옥의 『수수밭으로 오세요』와 『멋진 한 세상』에서 21세기 한국사회의 절대빈곤에 처한 사회하층민들의 야성적이고 존엄한 삶을 읽어내는 따뜻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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