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아픈 천국

대빈창 2016. 7. 8. 05:38

 

 

책이름 : 아픈 천국

지은이 : 이영광

펴낸곳 : 창비

 

“한 유령이 우리 시대 한국문학을 떠돌고 있다 - 『아픈 천국』이라는 한 유령이. ”

 

문학평론가 이찬의 해설 「유령의 존재론, 또는 초혼(招魂)의 정치학」의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시인을 국가폭력으로 억울하게 스러져 간 용산철거민 참사의 비극적 죽음을 형상화한 「유령 3」를 통해 알았다. 나희덕의 시 강의노트 『한 접시의 시』에 전문이 실렸다. 둔탁한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가격당한 충격이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급한 마음에 읍내서점에 부탁할 여유도 없이 온라인 서적을 통해 손에 넣었다.

시집은 3부에 나뉘어 각 부마다 19편으로 모두 57편이 실렸다. 시인은 이 시대를 죽음과 유령의 시대로 규정했다. 억압과 부조리가 갈 데까지 간 이 땅의 현실에 사회비판적 상상력을 강도 높게 드러낸 1부의 시들에 나의 눈길은 오래 머물렀다.

 

대한민국이여, 대가리에 쓴 그 대(大)자는 / 음경확대수술 후유증 앓는 곪은 귀두 같구나 / 커질 수만 있다면 문드러져도 좋아 /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 / 반쯤 얼어터진 봄이 다 가도록 / 사람 죽여 원혼 만들고 / 전쟁과는 전쟁할 줄 모르는 공포의 / 대한민국이여, 함께는 사실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 그것이 절망이겠지 / 무수히 적을 물리쳐도 예부터 / 전쟁을 무찌른 용사는 없었는데 / 대한민국이여, 겨우겨우 키운 좆 움켜쥐고 / 사창가로 쳐들어가는 취한 수컷 같구나

 

「대(大)」(25쪽)의 전문이다. 대한민국은 죽음을 권하는 사회였다. “온 몸으로 견딘 투병기며 참혹한 현실복귀전이다. 오래 건재할 것이다.” 시인 안상학의 표사의 마지막 구절이다. 앞날개 시인의 이력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의성에서 나고 안동에서 자랐다. 안동시인 안상학과 세 살 터울이었다. 나는 「길」(72 ~ 73쪽)의  ‘무른 필적을 남기지 않는 일’에서 현실에 두 눈 똑바로 뜨고 시업에 게으르지 않겠다는 시인의 자기다짐을 눈치 챘고, 「버들집」(64 ~ 65쪽)의 마지막 3연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보행기를 밀고 가는 석양의 늙은 여자는 어머니, 어머니, / 하고 불러도, 귀먹어 / 돌아볼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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