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만국의 노동자여
지은이 : 백무산
펴낸곳 : 실천문학사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를 떠받친 산업은 조선업이었다. 2010년 국내 선박해양구조물 수출은 전체 수출의 10.5%를 차지했다. 그때 조선업계는 선박을 넘어 해상 석유탐사시추시설까지 뛰어들었다. 그런데 지금 신규 물량수주가 없다. 조선 빅3에서 울산의 현대중공업을 제외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자리 잡은 거제는 불황을 모르는 도시에서 유령도시의 전락을 걱정할 지경이 되었다. 불과 5년 전만해도 최고의 시절을 구가하던 조선업이 제2의 IMF사태 뇌관으로 추락했다. 노동자 대량해고라는 칼바람이 불고 있다. 거제시를 고용재난특별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촉구하는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백무산의 연작시 「지옥선」을 떠올렸다.
기억이 또렷하다. 1988년 도서출판 청사에서 발간된 철의 노동자의 쇳소리로 점철된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를 잡으며 나는 벅찬 희열로 얼마나 떨었던가. 1987년 여름 노동자 대투쟁의 산물인 시집은 시편마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의 당위성이 번뜩였다. 그렇게 노동자시인 백무산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1990년 두 번째 시집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가 나왔다. 울산 현대중공업 대파업 투쟁을 한편의 장시로 엮은 시집이었다. 그 시절 노동문학은 변혁운동의 무기였다. 한국노동문학의 기념비적인 시집이 출간 26년 만에 개정판을 선보였다. 반가웠다. 표지그림은 여전히 민중판화가 오윤의 ‘신나게 징을 두드리는 투사’였다. 4부에 나뉘어 69편이 실렸고, 해설은 시인 김형수의 「백무산을 소개하는 문예 보고서 - 노동자들에게 드림」이 여전했다. 「경찰은 공장 앞에서 데모를 하였다」(69 ~ 71쪽)의 5·6연이다. 시집을 다시 잡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시편이다.
경찰은 데모를 하였다 / 그들은 졸개들을 투입했다 / 그들은 방독면을 쓰고 살상 무기를 들고 /주인 앞에 몰려와서 데모를 하였다 / 최루탄을 쏘고 군홧발로 짓이기며 / 과역 시위를 하였다 / 쇠몽둥이를 들고 곤봉을 휘두르며 / 극렬 시위를 하였다 / 공장 앞에 몰려와 / 극렬하게 데모를 하였다
노동자들은 진압에 나섰다 / 저들의 살상 무기를 막자고 / 지게차가 나섰다 포클레인이 나섰다 / 깃발을 들고 함성으로 나섰다 / 주인인 노동자들은 피 흘리며 진압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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