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4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7

토진이가 만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올 겨울은 삭풍이 맵차고 한파가 기세등등합니다. 눈까지 자주 내리고 양도 많습니다. 추운 계절을 살아가는 토진이가 어느 해보다 고달픈지도 모르겠습니다. 쉬는 날 햇살이 봉구산을 넘어와 바닷가 마을을 비추었을때 대빈창 산책에 나섰습니다. 산기슭의 헐벗은 잡목 숲 쌓인 낙엽에 귀를 등에 바짝 붙인 토진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여전히 마른풀로 연명하였습니다. 추위를 이겨내려면 에너지를 비축해두어야 하는데. 녀석은 운이 좋은 토끼입니다. 내처 집으로 돌아와 창고로 들어섰습니다. 어머니의 야무진 손길을 탄 스무여 남은 포기의 김장배추가 가빠아래 갈무리되었습니다. 배추는 푸른 기운을 잃지 않고 한겨울을 나고 있었습니다. 두 포기를 차에 싣고 대빈창 해변으로 달렸습니..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3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늘은 ○ ○ ○날 우리들 세상 ○ ○ ○를 산토끼로 바꾸어야겠습니다. 흥이 절로 나는 오월이 돌아왔습니다. 대빈창 해변의 제방 끝 삼태기 지형의 가파른 벼랑에 색이 점차 짙어갔습니다. 절기에 둔감한 이곳도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입니다. 풀과 나무가 연두에서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아까시가 가지에서 새순을 틔우고 경쟁이나 하듯 허공에 오므렸던 잎을 펼칩니다. 으름덩굴은 하루가 다르게 줄기를 뻗어 나갑니다. 제가 입을 오물거리며 섭식하는 것은 으름덩굴의 잎입니다. 정확히 제 나이는 만 네 살입니다. 4년 전 저는 오일장에서 만난 새로운 주인 손에 이끌려 오빠와 함께 이곳 섬에 왔습니다. 주인은 평일에 뭍에..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2

2017년 정유년 설날 연휴가 나흘 뒤입니다. 대빈창 토끼 토진이가 네 살이 됩니다. 추운 계절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며 토진이와 눈을 맞추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엽록소가 사라진 계절. 토진이의 먹이섭취는 날이 갈수록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해변 제방에 이어진 산비탈의 풀을 맘껏 포식하던 토진이는 끼니를 찾아 가파른 산비탈을 헤맸습니다. 나의 대빈창 산책도 공휴일이나 찾게 되었습니다. 끈질기게 어둠의 장막은 물러날 줄 모르고 날도 차가워졌습니다. 평일의 걷기를 건강관리실 런닝머신으로 대신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주말을 맞아 나선 대빈창 산책도 토진이가 산속깊이 들어가면 만날 수 없습니다. 토진이를 앞으로 몇 해나 더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애완토끼의 수명을 검색합니다. 토끼의 평..

지 살 궁리는 다 한다.

주객전도. 노순이의 오른 앞다리 무릎 관절의 상처가 깊습니다. 몸이 약한 녀석이 절뚝절뚝 힘겹게 몸을 옮깁니다. 노순이에게 린치를 가한 범인은 감나무집 고양이입니다. 새끼 고양이의 자지러지는 비명에 놀라 뒷집 형수가 기겁해 부엌에서 뛰쳐나갔습니다. 프라이 판에 담긴 밥을 먹던 노순이에게 묻지마 폭행을 저지른 덩치 큰 노란 고양이가 줄행랑을 놓았다고 합니다. 겁에 질린 노순이는 콩밭에 몸을 숨겼습니다. 감나무집 형수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굶어야 쥐를 잡는다는 지론입니다. 녀석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웃집 새끼 고양이의 밥을 탐냈습니다. 주인의 눈길이 멀어진 틈을 타 재순이와 노순이의 밥을 훔쳤습니다. 녀석은 쥐잡는 노고가 귀찮아, 이웃집 새끼 고양이들의 밥에 길들여졌습니다. 무엇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