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마음 4

달빛커튼 드리운 바다

계절은 24절기에서 열여덟 번째 절기 상강霜降을 이틀 앞두고 있었다. 상강은 한로寒露이후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며 밤에 기온이 떨어져 서리가 내린다는 늦가을의 절기였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일출은 반시간을 더 기다려야했다. 섬의 중앙에 솟은 봉구산을 넘어 햇살을 흩뿌리는 느리 마을의 아침은 더욱 늦었다. 손전화의 손전등으로 발밑의 어둠을 밝히며 봉구산 자락 옛길을 탔다. 대빈창 해변에 닿았다. 물때는 사리(일곱물) 이었다. 볼음도 군부대의 하늘이 불빛으로 훤했다. 나는 바다에 드리워진 금빛물결을 보며 아! 저것이 ‘달빛커튼’ 이구나 중얼거렸다. 우리나라 펜션 상호에서 가장 낭만적인 이름 〈달빛커튼 드리운 바다〉는 시인 함민복의 작명이었다. 나는 산책에서 돌아와 시인의 두 번째..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책이름 :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지은이 : 함민복 펴낸곳 : 시공사 ○ ○ ○ 친구에게 좋은 글 많이 쓰시게 늘 행복하고. 2009 가을 함민복 - 『미안한 마음』(풀그림, 2006) ○ ○ ○ 님 늘 고맙고 멋진 날들 보네시오 2012. 7. 9 함민복 드림 - 『미안한 마음』((주)대상미디어, 2012) ○ ○ ○ 님 고맙습니다. 2021. 봄 함민복 올림 -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시공사, 2021) ‘이 책은 2006년에 출간한 산문집 《미안한 마음》에 새로운 원고를 덧붙여 펴냈습니다.’ 나는 시인 친구를 둔 덕분에 그의 휘날리는 듯한 멋진 자필서명이 쓰인 시집·산문집 전부를 갖고 있다. 두 번째 동시집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문학동네, 2019)가 출간된 지 벌써 2년이 되..

미안한 마음 - 2

책이름 : 미안한 마음 지은이 : 함민복 그린이 : 추덕영 펴낸곳 : 대상 나는 시인의 자필서명이 담긴 ‘미안한 마음’을 두 권 갖고있다. 2006년 풀그림의 초판본과 2012년 대상미디어에서 재출간된 양장본이다. 이 책은 ‘바람을 만나니 파도가 더 높아진다’, ‘새들은 잘 잡히지 않는다’, ‘통증도 희망이다’, ‘술자리에서의 충고’, ‘읽던 책을 접고 집을 나선다’ 5부로 구성되었는데, 시와 산문 40편이 나눠 실렸다. 시인의 글만 그대로지, 재출간된 책은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삽화를 그린이는 이관수에서, 추덕영으로. 표사도 방송인 이금희의 글만 그대로 살아있다. 초판본의 소설가 박민규의 글이, 양장본은 드라마 작가 김윤경의 글로 바뀌었다. 초판본 앞날개에 그려진 허영만 화백의 시인 컷은 보이지 않고,..

미안한 마음

책이름 : 미안한 마음 지은이 : 함민복 펴낸곳 : 풀그림 시인 함민복은 선하다. 다르게 말하면 마음결이 곱다. 자주는 못 보지만 불현듯 시인이 생각나면 나는 화도 동막리로 달려갔다. 시인을 보려면 지금 그의 위치를 추적해야 한다. 손전화(핸드폰이라고 써 오던 것을, 나도 시인을 따른다)부터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출판이나 원고 문제로 서울에 올라가 있거나, 그도 아니면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고깃배를 타고 화도와 장봉도 사이 바다에 떠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지금까지 낸 4권의 시집과 2권의 산문집 중 유일하게 자필서명이 들어있지 않은 책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올 정초 나는 오랜만에 시인의 누추한 집을 찾았다. 그때 시인은 2권의 초창기 시집과 신간 도서인 이 책을 나에게 건넸다. 2권의 시집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