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미안한 마음
지은이 : 함민복
그린이 : 추덕영
펴낸곳 : 대상
나는 시인의 자필서명이 담긴 ‘미안한 마음’을 두 권 갖고있다. 2006년 풀그림의 초판본과 2012년 대상미디어에서 재출간된 양장본이다. 이 책은 ‘바람을 만나니 파도가 더 높아진다’, ‘새들은 잘 잡히지 않는다’, ‘통증도 희망이다’, ‘술자리에서의 충고’, ‘읽던 책을 접고 집을 나선다’ 5부로 구성되었는데, 시와 산문 40편이 나눠 실렸다. 시인의 글만 그대로지, 재출간된 책은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삽화를 그린이는 이관수에서, 추덕영으로. 표사도 방송인 이금희의 글만 그대로 살아있다. 초판본의 소설가 박민규의 글이, 양장본은 드라마 작가 김윤경의 글로 바뀌었다. 초판본 앞날개에 그려진 허영만 화백의 시인 컷은 보이지 않고, 산뜻한 양장본으로 탈바꿈했다. 재출간본의 겉표지는 특허 출원중이라는데 질감이 아주 독특하다.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PVC 원단에 디자인했다는데, 내게는 말린 복어 껍질을 만지는 것처럼 까끌까끌한 느낌이 좋았다.
6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책은 새얼굴을 내밀었지만, 사람들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화도면 동막리 동막교회 앞 10만원짜리 월세 시골집에서 홀로 살던 시인은 동갑내기 신부를 맞아 품절남이 되었고, 신혼집으로 길상면 장흥리 들녘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전셋집을 마련했다. 시인의 책이 출간되면 나보다 먼저 알고 기쁘게 소식을 전해주던 선배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시인이 ‘빠른 쾌차를 기원합니다’라고 서명한 초판본은 선배의 책장 한 귀퉁이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막내아들에게 여자가 생긴 줄 알고 누나와 함께 여자 양말을 사들고 먼 길 강화도까지 찾아오셨던, 고교를 졸업하고 원전에서 일한 봉급으로 사드린 외국산 보청기를 애지중지하시던 시인의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나는 ‘배가 웃었다’라는 글을 읽어 나가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내리쳤다. CD케이스 만드는 공장을 하는 친구 자선이가 공장식구들의 뱃놀이 야유회로 배를 예약했는데, 급한 일이 생겨 해남 바닷가가 고향인 아버지와 어머니만 모시고 왔다. 그 뱃놀이에 시인이 동승하여 그물을 털어 농어, 광어, 숭어를 잡고, 친구 부모님은 옛일을 회고하며 모시조개를 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친구 자선은 이 책을 재출간한 (주)대상미디어의 정자선 펴낸이가 분명하다. 펴낸이는 시인과 동갑내기 친구였다. 나는 자필서명한 카툰집 ‘꽃봇대’를 얻으려 시인집을 찾았다가 출판사 사장을 우연히 만났다. 그렇다. ‘미안한 마음’ 초판본은 시인의 후배가 막 꾸린 신생출판사에서 펴냈는데, 경제 사정으로 출판사가 문을 닫아 절판되고 말았다. 친구는 시인의 카툰집을 펴내고, 절판된 산문집을 재출간하면서 출판업의 문을 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