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조국은 하나다
지은이 : 김남주
펴낸곳 : 실천문학사
나는 시인 김남주를 말할 자격이 없다. 그의 짧은 삶은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를 웅변했다. 시인의 맑은 영혼에 비해 나의 삶은 구차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나는 시인의 시와의 인연을 언급할 뿐이다. 혁명시인 김남주는 1946년 해남에서 태어나, 1994년 망월동에 묻혔다. 내가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때가 1987년이었다. 그때 시인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으로 투옥 중이었다. 내가 처음 잡은 시집은 ‘나의 칼 나의 피’였다. 1987년은 이 땅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해였다. 그 역사적 산고를 ‘6월 국민대항쟁’이라 부른다.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은 권력을 연장하려 4·13 호헌조치라는 꼼수를 부렸다. 이에 문협은 맞장구를 쳤다. 소위 순수(?) 문학을 한다는 치들의 독재자를 향한 해바라기성 역겨운 아부였다. 후배와 나는 신문기사와 김남주의 시 ‘개새끼들’을 확대 복사하여 단과대 건물마다 붙였다.
이 시집의 1판은 1988년에 간행되었다. 시집 ‘진혼가’와 ‘나의 칼, 나의 피’ 그리고 옥중에서 새로 쓴 시들을 모아 212편이 실렸었다. 이때 시인은 10년 째 징역을 살고 있었다. 시인은 못으로 은박지에 시를 새길 수밖에 없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은 시인에게서 펜과 종이를 빼앗았다. 시인은 1988년 9년 3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리고 옥바라지를 해 온 박광숙 여사와 가정을 꾸렸고 외아들 토일이를 두었다. 시인은 1994년 운명하여 광주 망월 5월 묘역에 영면했다. 그때 나는 두 권의 책을 손에 넣었다.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 '피여 꽃이여 이름이여'. 이후 박광숙 여사는 강화에서 토일이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 얘기는 ‘빈들에 나무를 심다’에 실렸다. 90년 겨울 나는 안산공단의 화공약품 공장에서 밥을 샀다. ‘나의 칼, 나의 피’와 ‘조국은 하나다’ 두 권의 시집이 나의 수중에 있었는데, 구로로 적을 옮기면서 노동자문학회에 기증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시집은 2008년 3판으로 5부에 나뉘어 133편의 시가 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개새끼들’을 검색해도 오리무중이다. 김남주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였다는 노랫말만 떠올랐다. 판쇄를 새로 찍어내면서 시집에서 빠진 것인지, 나의 기억에 오류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선생님 자유다 뭐다 해방이다 뭐다 통일이다 뭐다 하는
그런 꿈을 꾸시는데 대해서는 우리로서는 관심 밖입니다
그러니 그 뒤에 숨어 있는 밥을 부자들에게서 빼앗아 가난뱅이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꿈일랑 꾸지 말아주십시오
그때는 우리 개들의 이빨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 개들의 발톱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개들은 인간들처럼 은인에게 배은망덕한 족속들은 아닙니다
부자들은 우리 개들에게 있어서 밥과 생명의 은인이고 가난뱅이들은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개들의 습격을 받고 2. 中에서, 283 ~ 284쪽)
이 시집에는 무수한 개들이 등장한다. 말할 것도 없이 자본가들이 던져주는 떡고물에 침을 질질 흘리는 무리들이다. 바로 김지하의 ‘오적(五賊)’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의미에서 ‘개’를 역설적으로 받아들였다. ‘개털’은 속어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나 짖거리’를 말한다. 90년대 중반 다리가 부러진 나는 현장생활을 접었다. 나의 눈에 세상은 정말 하찮아 보였다. 주위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나는 이렇게 빈정댔다. ‘야! 무슨 개털 같은 것 가지고 그리 끙끙 앓고 있냐.’ 그러자 자기 속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그들은 서운해하며 재미로 나에게 '개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엿 같은 세상에서 오히려 개털이 정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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