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제대로 된 혁명
지은이 : D. H. 로렌스
옮긴이 : 류점석
펴낸곳 : 아우라(AURA)
큰 형이 대문을 나섰다. 나는 슬그머니 형의 독방인 건너방으로 잠입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보풀이 일고 붉은 기가 바랜 커튼을 제쳤다. 삼단 책장의 앞트임을 낡은 커튼으로 압정을 박아 가렸는데 스무여 권의 책이 보물처럼 숨겨 있었다. 일명 붉은 책들이었다. 큰형과 여덟살 터울로 나는 막 중학에 들어 선 나이였다. 나는 창틀에 문고판 크기의 책을 펼쳐놓고, 대문의 인기척을 흘끔거렸다. 소년기를 벗어나는 시기, 나의 도둑 책읽기는 달뜬 열기를 뿜어내는 날숨에 아찔함과 비릿함이 묻어났다. 80년대 초반.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한 나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술주정으로 풀었다. 몇 푼의 돈이 호주머니에 들라치면 부리나케 나는 읍내로 향했다. 코끝이 매캐한 곰팡이 내와 지릿한 쥐 오줌내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빗줄기가 사선을 긋는 스크린에 눈길을 주었다. 동시상영의 변두리 극장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녀가 내뿜는 열기로 항상 뜨거웠다. 소위 부인 시리즈물로 관음증의 절정을 보여주는 에로물들이었다. 그렇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하면 나는 붉은 책과 실비아 크리스텔의 성애로 가득한 애로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천상 촌놈이었다.
나는 시집하면 우선 손아귀에 들어가는 아담한 사이즈를 연상했다. 60여수의 시편과 문학평론가나 문인의 해설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얇은 부피의 휴대용 시집. 그런데 이 책은 152편의 시와 시인의 자유시에 대한 시론이라 할 수 있는 ‘현재의 시’ 그리고 옮긴이의 해설까지 만만치 않는 두께의 양장본으로 독자를 주눅 들게 만든다. D. H. 로렌스는 어린 나에게 전쟁으로 성불구가 된 남편을 가진 부인이 산지기와 노골적인 육체적 향락을 추구하는 애로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쓴 작가로 인식되었다.
나는 작은 외딴 섬에서 자칭 ‘얼치기 생태주의자’로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한다. 외국 생태시를 찾다 우연히 이 시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작가는 1,000여편이 넘는 시를 창작한 시인이기도 했다. 나의 아둔함이여. 이 시집의 ‘농가의 사랑(18쪽 ~ 21쪽)’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연상된다. 로렌스는 건전한 성의 회복만이 비참한 기계문명에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성 중심주의와 과학물신을 거부하고 부르조아지의 속물적 위선을 비난했다. 나는 이 시집에서 제 3부 동물을 소재로 한 생태주의 사상이 구현된 시들과 제 4부 불평등, 계급의 대립을 가져 온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들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로렌스는‘개인의 내적 혁명이 사회제도적 혁명으로 발전되고, 궁극적으로는 삶 자체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연결될 때만이 생명과 삶이 향유(370쪽)’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혁명을 염원했던 사랑과 저항의 시인 로렌스의 표제시(266 ~ 267쪽)를 읊어보자.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우리 노동을 페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