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풋사과의 주름살
지은이 : 이정록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어물전 귀퉁이/못생긴 과일로 塔을 쌓는 노파
(···)
주름살이란 것/內部로 가는 길이구나/鳶 살처럼, 內面을 버팅겨주는 힘이구나
표제작 ‘풋사과의 주름살(12 ~ 13쪽)’ 1연과 3연이다. 2연은 풋사과와 노파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다. 시인은 오래되어 쭈글쭈글해진 풋사과를 노파에게서 샀다. 그 동기는 순전히 국수 토막 같은 잇몸과 검버섯 때문이었다. 시고 떫은 풋사과는 아내에게도 푸대접을 받아 부엌에서 이리저리 치인다. 시인은 사과를 버리려고 흠집을 내다가 무심결에 한쪽을 입에 넣었다. 의외로 풋사과에 단맛이 배었다. 시인은 여기서 주름진 풋사과의 단맛과 산전수전 인생살이를 겪은 노파의 주름살을 연결시켰다.
시인은 닳고 사라져가는 것들에게 따듯한 눈길이 머문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이 해설 ‘대나무의, 잔 말씀’에서 밝혔듯이 시편마다 농촌 사회적, 취락 사회적 정서가 농밀하게 배어있다. 자두나무, 풋사과, 대(竹), 고구마, 새, 오동나무, 송장메뚜기, 플라타너스, 개미, 살구꽃, 개, 참깨, 대하, 잠자리, 담배꽃, 우렁, 은행나무, 기러기, 오징어, 닭. 되는대로 적은 시의 제목들이다. 시골에서 자란 시인과 같은 연배인 나는 시집을 펼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늙은 몸통, 갈라진 홈마다 붉은 눈물 솔아 있(11쪽)’는 농익어 떨어진 자두와 ‘꽃밭 옆에서 세수를 하고, 수건 대신 치마를 걷어 올려 닦은(15쪽)’어머니는 텃밭 한 구석의 ‘못자리하고 남은 황토(16쪽)’에 고구마를 묻으셨다. 그리고 섬으로 이사 오기 전 내가 태어나 자랐던 김포 옛집의 헛간에 찬바람이 불기 전에 연탄을 들여 놓았다. 겨울을 난 이른 봄에 헛간의 ‘연탄이 등 기댔던 흙벽엔 먹빛으로 굵은 대나무가 쳐 있었고(60쪽)’ 경지정리하기 전 들녘 둠벙의 우렁이는 ‘이끼도 먹으면서 또한 이끼를 덮고 제 몸을 지킨다(68쪽)’
시인이 독자에게 일러주는 자연의 섭리가 시편마다 실린 이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9편의 시가 실렸다. 아니 自序까지 꼭 60편이 실렸다. 너무 늦게 시인을 만났다. 유용주의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잡고 나는 작년 대 여섯 권의 시집을 손에 넣었다. 그 중 한권이었다. 시인은 ‘93년에 등단했으니, 올해가 만 20년이다. 이 시집은 초판이 ’96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의 첫 산문집 ’시인의 서랍‘이 따끈따끈하다. 나는 부리나케 가트에 던져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