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섬을 걷다
지은이 : 강제윤
펴낸곳 : 홍익출판사
거제-지심도. 통영-욕지도, 연화도, 우도, 두미도, 매물도, 소매물도, 추봉도, 비진도. 완도-여서도, 덕우도. 제주도-가파도, 마라도, 추자도. 옹진-자월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신안-임자도. 군산-어청도, 연도. 여수-거문도. 대천-외연도. 강화-볼음도, 아차도, 주문도, 말도, 석모도, 미법도, 서검도. 시인이 걸은 이 책에 등장하는 29개의 섬이다.
표지 사진은 강화 볼음도의 전경이다. 시인과의 인연을 떠올리려 책을 들척인다. 인쇄일은 2009년인데, 발행일이 2008년이다. 오타다. 이 책은 2009년 1월에 인쇄하고 발행했다. 특이하다. 지은이의 인지를 붙이는 란에 ‘유랑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러고보니 나와 시인과의 인연은 5년 주기로 이어졌다. 2002년 보길도를 여행하면서 시인이 3년 걸려 지은 돌집 ‘동천다려’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리고 2007년 늦여름. 이 땅의 사람 사는 모든 섬을 두발로 걷는 중인 시인을 강화도와 주문도를 운항하는 카페리호 삼보11호에서 우연히 보았다. 지금 객선은 덩치가 커진 삼보12호로 바뀌었다. 볼음도 출장길이었다. 배는 주문도를 떠나 아차도와 볼음도를 들러 강화 본도 외포리항에 닿는데 1시간 40여분이 걸린다. 손바닥만한 섬 아차도에서 낯익은 이가 배낭을 진 채 배에 홀로 올랐다. 보길도 시인 같았다. 하지만 긴가민가했다, 객실창을 통해보니 햇빛에 얼굴이 검게 그을리고, 구레나룻이 온통 하관을 덮은 시인은 손에 ‘신의 역사’가 들렸다.
‘신앙이란 인생이 아무리 비극적으로 보여도 거기에는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키워 나가는 행위다. - 카렌 암스트롱(206쪽)’ 석모도 순례기를 시작하는 글의 인용구다. 나는 말을 붙이려다 그만두었다. 먼 보길도에서 시인이 서해의 작은 외딴 섬에 발걸음을 할 리가 없었다. 그날 잠자리에 누우면서 나는 후회했다. 말이라도 붙여볼 것을. 다음날 점심시간 나는 주문도의 유일한 식당이 있는 선창으로 향했다. 시인이 서도 군도(群島)에 왔으면 분명 주문도에 들를 것이고, 식사는 선창식당에서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시인이었다. 다음날 행정선만 들어갈 수있는 말도로 나는 시인을 안내했다. 면소재지 주문도로 돌아와 점심을 하고 시인은 하루 두 번 있는 여객선 오후배를 타고 강화도로 나갔다. 미법도, 서검도의 순례를 서두르기 위해.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시인이 살아 온 삶의 조각들을 맞추고 있었다. 시인은 통영 욕지도를 찾으면서 ‘시대’를 같이 살았던 동지를 찾는다. 내가 기억하기로 시인은 ‘노동해방문학’사건으로 3년 2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시인의 어머니는 인천 연안부두 식당 파출부 일을 하시며 한 달에 한번 쉬는 날, 춘천 교도소의 큰아들 면회를 다녀오셨다. 시인은 욕지도에서 단식으로 죽은 열녀의 비애를 생각한다. ‘단식은 저항의 수단이지 자살의 방편이 아니다.(27쪽)’ 그렇다. 시인은 33일간의 단식 끝에 토건족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인 보길도에 대형 댐을 건설하려는 행정관청과 토목업자들에 대한 저항이었다.
우리나라에는 4,400여개의 섬이 있고, 그중 500여개 섬이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다. 시인은 3년반동안 100여개의 섬을 걸었다. 그 1차분이 책으로 묶였다. 그렇다면 단순계산으로 앞으로 시인은 4권의 책을 더 출간해야만 한다. 기분 좋게 기다려지는 일이다. 시인은 지금 어떤 섬을 걷고 있을까. 섬은 우리 문화의 원형질을 갖고 있다. 그 섬이 토건자본의 잠식으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시인의 발걸음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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