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그대라는 문장
지은이 : 손세실리아
펴낸곳 : 삶창
악양의 박남준, 제주의 김수열, 서산의 유용주, 밀양의 고증식, 남원의 복효근, 안동의 안상학, 지리산의 이원규, 거문도의 한창훈······ 등(96쪽) 시인이 직접 손꼽은 문단의 친구들이다. 분명 이들의 글 중에서 나는 카톨릭 영세명을 필명으로 쓰는 여성 시인을 처음 만났을 것이다. 올 여름 시인의 시집 두 권을 읽었다. 품절 딱지가 붙은 것을 알면서 슬며시 읍내서점에 부탁했는데 시인이 펴낸 시집과 산문집 모두를 손에 넣었다. 인연이 고맙다. 나는 사람과의 인연을 다룬 산문집에 끌렸다. 이문구의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 이호철의 『문단골 사람들』, 윤중호의 『느리게 사는 사람들』, 유용주의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그리고 『한창훈의 향연』까지. 5부에 나뉘어 50꼭지가 실린 책은 시인이 만난 사람들(시인, 미술가, 사진가 등)과의 인간적인 인연을 꾸밈없이 전해주었다.
갠지즈강 보트투어로 먹고사는 서른 두 살의 툴루 / 음독자살한 탈영병 이복 오빠 / 명절 음식장만을 진두지휘하는 큰어머니(본처) / 바라나시 화장터 관리인 / 강화도 나들길 두두미마을 촌장 / 팔레스타인 작가 자카리아 모하메드 /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 / 제주올레 왕언니 이유순 / 시인 조태일·신달자·이정록·박영근·이병률·김수열·정진규·문정희·조재도·성희직 / 화가 최병수·박진화 / 사진가 김영갑·고영희 / 동화작가 홍성중 / 목수 이환갑 / 초보 습작생 강산숙 / 북한 계관시인 오영재
통한다는 말, 이 말처럼 / 사람을 단박에 기분 좋게 만드는 말도 드물지 / 두고두고 가슴 설레게 하는 말 또한 드물지
그 속엔 / 어디로든 막힘없이 들고나는 자유로운 영혼과 /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 위로의 손길이 담겨 있지
「통한다는 말」의 1·2연이다. 이 시는 박진화 화백의 초대전 축시로 쓰였다. 박진화 화백은 시인에게 포스텍 전시회 도록에 실을 글을 부탁했다. 원고 마감을 넘겨 신경이 곤두섰지만 시인은 흔쾌히 포항으로 향했다. 화백과 시인의 인연이 부러웠다. 올 여름 어느 날 아침 삼보 12호(강화도와 서도 군도를 오가는 카페리호) 객실에서 박진화 화백을 오랜만에 만났다. 우리는 그 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실망스런 미국 대선 후보 선거를 올리다 화제를 이 땅의 여성 시인으로 옮겼다. 나는 손세실리아의 「곰국 끓이던 날」를 떠올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때 박진화 화백이 맞장구쳤다.
“어, 손 시인 글이 내 도록에 실렸는데.”
박진화 화백은 올 봄 강화읍에서 볼음도로 이사왔다. 나는 책장에서 두 권의 도록을 꺼냈다. 『강화 發 분단의 몸 : 박진화』와 『POSTECH 초대전 박진화 - 발밑과 눈』. 시인은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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