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
지은이 : 김영무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인연이다. 내 손에 들린 시집은 〈창비시선 178〉로 1998년 초판본이다. 시인의 생몰연도는 1944년 ~ 2001년이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거의 20년이 다 되가는 시집이 내 손에 닿다니. 앨버트 놀런의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를 읽었다. 《분도출판사》는 어떤 책들을 펴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시인을 만났다. 시인은 불혹의 나이를 넘겨 첫 시집 『색동 단풍숲을 노래하라』를 1993년에 상재했다. 이 시집은 지천명을 넘겨 펴낸 두 번째 시집이고, 마지막 시집은 작고한 해에 나온 『가상현실』이다. 나는 급하게 두·세 번째 시집을 손에 넣었다.
시집은 ‘금강경의 어법으로 사도 바울로의 서간문 형식을 빌려 예수님이 조선교회에 보낸 편지’ 형식을 취한 세 편의 장시(長詩)가 실린 1부를 비롯하여 5부에 나뉘어 56편이 실렸다. 발문은 시인 김광규의 「조각보에서 벽화처럼 거대한 피륙으로」다. 시편들은 환경파괴의 현실을 고발하고, 자연예찬과 공동체적 삶의 회복을 노래했다. 그렇다고 금속성 목청을 높이지 않았다. 소박한 삶의 진실과 향토적 서정을 단아한 어조에 담았다. 자칭 얼치기생태주의자인 내가 찾던 시집이었다. 품절된 첫 시집을 물색해야겠다. 시집에 실린 한편 한편의 시가 내게 보물처럼 여겨졌다. 시집을 손에 펼친 보람은 넘치고 넘쳤다. 마지막은 두 편의 시 전문을 싣는다.
이삭 덜 털린 볏짚 쑤셔 넣으면 / 아, 빠알간 비단 펼쳐지고 / 매화꽃들 별처럼 터지던 / 어린시절의 아궁이 속 ―
내일은 누가 / 저녁놀 속에 나를 던져
어느 밤하늘에 샛별 뜰까「아궁이 속」(78쪽)
춘분 가까운 아침인데 / 무덤 앞 상석 위에 눈이 하얗다
어머님, 손수 상보를 깔아놓으셨군요 / 생전에도 늘 그러시더니 / 이젠 좀 늦잠도 주무시고 그러세요 / 상보야 제가 와서 깔아도 되잖아요「어머니」(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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