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고라니는 쓸개가 없다 - 2

대빈창 2016. 11. 10. 06:57

 

 

 

- 어떤 처지에 있는지 모르는 고라니의 멍청한 짓은 쓸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우스개로 들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말, 노루, 고라니 등 풀만 먹는 초식동물은 담낭(膽囊)이 없습니다. - 2012년 7월 초에 올린 글의 마지막입니다. 엊그제가 입동이었습니다. 해가 떨어지기 전 서둘러 저녁산책에 나섰습니다. 이미지는 다랑구지 들녘을 지나 대빈창 해변의 초입입니다. 해안을 따라 가늘고 기다랗게 방풍림이 조성되었습니다. 숲 바닥은 조금만 파도 모래가 나옵니다. 오랜 세월 바닷바람을 타고 모래가 사구를 형성했습니다. 35여 년 전 가난했던 시절. 한 뼘의 논이라도 늘릴 심산으로 제방을 쌓고, 해송을 심어 바람을 막았습니다.

숲에서 새끼 고라니가 해변 가는 길 위로 먼저 튀어 나왔습니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허둥지둥 왼편 고추밭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뒤를 따르던 어미가 눈 깜짝할 사이 새끼가 사라졌습니다. 녀석은 새끼가 보이지 않아 당황하였는지 인기척도 못 느끼고 뒤돌아서 어슬렁거렸습니다. 분명 새끼를 찾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행운이었습니다. 고라니는 겁이 많고 소심해 사람 그림자만 뜨여도 줄행랑을 놓습니다. 초식동물 고라니의 뜀박질은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진화의 힘은 놈들의 이미지를 담을 수 없을 만큼 빨랐습니다. 다행히 호주머니에 휴대폰이 있었습니다. 뒤늦게 나를 발견한 어미가 앞질러 대빈창 해변으로 달아났습니다.

요즘 산책마다 대여섯 마리의 고라니가 흔하게 눈에 뜨였습니다. 녀석들의 먹을거리가 귀해지는 계절입니다. 놈들은 자꾸 민가 가까이 내려왔습니다. 봉구산을 에돌아가는 산책로의 산밭마다 휑뎅그렁합니다. 농부들의 손은 알뜰하게 밭작물의 알곡을 갈무리했습니다. 이제 섬주민들은 녀석들을 거들떠도 안 봅니다. 집 앞 텃밭의 배추·무로 김장을 마치면 섬은 깊은 겨울잠에 빠져 들겠지요. 산속은 오히려 먹을 것이 궁합니다. 수십년동안 쌓인 낙엽으로 풀이 자랄 수 없습니다. 녀석들에게 고난의 계절이 닥쳤습니다. 오죽하면 논두렁의 여린 풀줄기를 탐하겠습니까. 멀리 보이는 녀석들은 부드러운 벨벳 털에 감싸인 것처럼 보입니다. 녀석들의 털은 바늘처럼 억세고 날카롭습니다. 물기 많은 고라니의 눈망울을은 여리디 여린 짐승으로 느껴집니다. 보기와 달리 녀석들의 환경 적응력은 어느 야생동물보다 뛰어납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년 병신년 해넘이  (0) 2017.01.02
뒷집 새끼 고양이 - 4  (0) 2016.12.02
뒷집 새끼 고양이 - 3  (0) 2016.10.27
지 살 궁리는 다 한다.  (0) 2016.09.29
분지도의 힘  (0) 201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