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대빈창 2016. 12. 8. 07:00

 

 

책이름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지은이 : 박완서

펴낸곳 : 세계사

 

1950(20세)  전쟁 기간 중에 오빠와 숙부가 죽고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됨. 미8군 PX(동화백화점,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의 초상 화부에서 근무,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됨

1953(23세) 4월 21일 호형진扈滎鎭과 결혼.

 

작가연보의 부분으로 한국전쟁이 끝나가는 20여 개월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다. 소설은 도민증을 구하려 고양 학교에 머물다가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오빠를 올케가 치료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텅 빈 서울에서 빈집을 털어 연명하던 가족은 전선이 위아래로 요동치면서 월북과 남하의 피난길에 올랐다. 전선이 고착되며 가족은 어렵사리 돈암동 집에 합류했다. 오빠가 죽었다. 20살의 꽃다운 여대생으로서 작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미8군 PX 한국물산부 파자마부를 거쳐 초상화부에 적을 두었다. 소설은 PX건물 기술자 신랑을 만나 결혼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는 내가 몽상한 천재적인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가 만약 천재였다면 사는 일을 위해 예술을 희생하려 들진 않았을 것이다.”(281쪽) 같은 사무실에서 밥벌이를 하며 만난 박수근朴壽根 화백(1914 ~ 1965년)에 대한 젊은 작가의 인상이었다.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마티에르 기법과 굵고 검은 선의 단순한 형태로 서민의 일상을 소박하게 담아 낸 가장 한국적인 현대 회화를 그린 거장. 화가는 한국전쟁 시절 양키를 상대로 스카프에 초상화를 그려 쌀을 산 가난한 간판장이(?)이었다. 화가의 자존감은 ‘일제 때 선전에 입선한 작품을 모은 화집’을 작가에게 보여 주었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선한 「봄이 오다」가 실렸을 것이다. 이때 인연은 작가가 불혹의 나이로 등단한 작품 『나목裸木』으로 결실을 맺었다.

“미제 기름까지 얻었다는 건 대단한 소득이었다. 기름을 넉넉히 넣고 지진 김치찌개의 맛은 말할 수 없이 부드러웠고, 육식을 약비나게 하고 난 것 같은 징건하고 느글느글한 포만감까지 맛볼 수 있었다.”(40쪽) 달동네 현저동 피난집에서 올케와 벌인 보급투쟁(야간 빈집털이)의 특별한 노획물에 대한 회고담이었다. 나는 작가의 입맛 다시는 소리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 동물성 단백질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식품이 ‘빠다 기름’이었다. 동두천 큰 고모가 년 중 두 번 설날과 추석 큰 오빠집에 들고 온 선물이었다. 어머니는 김장김치에 빠다 기름을 큰 스푼으로 두어개 넣고 지져 밥상에 올렸다. 지금 생각하니 '빠다'는 동물성 기름 버터가 분명했다. 아이가 두 팔로 안아야 할만큼 커다란 깡통에 든 굳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