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부치다

병신년丙申年 동지冬至의 텃밭

대빈창 2016. 12. 21. 02:06

 

 

이미지는 병신년 동짓날 텃밭입니다. 세 두둑에 부직포를 씌웠습니다. 오른쪽 두 두둑은 마늘이고, 왼편 푸른 쪽파 옆 한 두둑은 양파입니다.

 

“막내오빠가 농사지은 쌀과 김장이라고 그렇게 좋아하더니. 먹지도 못하고 죽게 생겼네.”

 

병원을 나와 섬으로 향하며 뒷좌석의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솟구칩니다. 누이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로 간신히 숨을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식물인간이 된 지 일주일째입니다. 작년 7월 어머니가 척추협착증 수술로 3주째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누이가 병간호를 맡았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던 누이가 자꾸 토했습니다. 대장암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용하다는 ○○대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 중이었습니다. 때가 늦었나봅니다. 면역력이 떨어져 기침이 심하더니 폐종으로 번졌습니다. 호흡곤란으로 급히 가까운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웠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고명딸 손을 잡고 어머니가 울부짖습니다.

 

“내 딸이 왜 여기 누워있냐. 응. 제발 우리 딸 좀 살려주세요.”

 

텅 빈 밭두둑에 배추와 무 그리고 순무 잎사귀 찌꺼기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몸이 아픈 누이는 연례행사 김장담그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아랫집 할머니, 감나무집·뒷집 형수, 그리고 작은형이 애썼습니다. 몸이 아픈 누이와 일이 바쁜 도금공장 노동자 작은형이 시간을 못내 혼자 새벽에 일어나 삽으로 두둑을 일렀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가 애처롭게 일을 거들었습니다. 살균제가 없어 텃밭농사이래 처음 소독 못한 마늘 종구를 두둑에 넣었습니다. 지푸라기를 덮고 부직포를 씌웠습니다. 양파는 뒷집 형수가 씨를 부어 키운 종묘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너무 많아 한 주먹이나 돌려주었습니다. 자색양파가 눈에 띄었습니다. 어린뿌리도 의연히 보라색입니다. 올 양파는 비닐피복을 않고 그냥 부직포만 씌었습니다. 녀석들이 탈 없이 크기를 바랄 뿐입니다.

섬에 아직 눈 소식은 없습니다. 겨울비가 흔합니다. 마늘, 양파는 겨울 가뭄을 비켜갈 수 있습니다. 누이가 양파와 마늘처럼 추운 계절을 이겨내고 푸른 줄기를 곧추 세우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늘은 24절기 중 가장 중요한 절기인 동지입니다. 동지는 해가 제일 짧은 날이면서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입니다. 그래서 작은 설날이라 합니다. ‘동지 지나면 해가 노루꼬리만큼씩 빨리 뜬다’는 말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말은 틀렸습니다. ‘낮이 노루꼬리만큼 길어진다’로 바뀌어야 합니다. 해가 뜨는 시간은 대보름까지 오히려 조금씩 늦어집니다. 해 떨어지는 시간이 더 늘어나 낮이 조금씩 길어지는 것 입니다. 누이가 동지의 해처럼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서길 먼발치에서 기원하는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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