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정오의 희망곡
지은이 : 이장욱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집 : 『내 잠속의 모래산』(민음사, 2002), 『정오의 희망곡』(문학과지성사, 2006), 『생년월일』(창비, 2011), 『천국보다 낯선』(민음사, 2013),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것』(문학과지성사, 2016)
소설집·장편소설 :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장편소설/작가수첩, 2005), 『고백의 제왕』(소설집/창비, 2010), 기린이 아닌 모든 것(소설집/문학과지성사, 2015)
이론·평론집 : 혁명과 모더니즘(문학이론/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문학평론집/ 창비, 2005)
문단의 멀티 플레이어, 팔방미인,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불러야 마땅할 것 같다. 하나도 하기 어렵다는 일을 그는 세 가지를 치고 나갔다. 나는 그를 시인으로 불러야겠다. 남들은 문단의 대세로 그를 치켜세웠다. 아둔한 나는 온라인 서적에서 시집을 고르다 인기 목록에서 골라잡았을 뿐이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시집은 3부에 나뉘어 55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코끼리군의 실종 사건과 탈인칭의 사랑」이다.
우리는 우호적이다. / 분별이 없었다. / 누구나 종말을 행해 나아갔다. / 당신은 사랑을 잃고 / 나는 줄넘기를 했다. / 내 영혼의 최저 고도에서 / 넘실거리는 음악, / 음악은 정오의 희망곡, / 우리는 언제나 정기적으로 흘러갔다. / 누군가 지상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 냉소적인 자들은 세상을 움직였다. / 거리에는 키스 신이 그려 진 / 극장 간판이 걸려 있고 / 가을은 순조롭게 깊어갔다. / 나는 사랑을 잃고 / 당신은 줄넘기를 하고 / 음악은 정오의 희망곡, / 냉소적인 자들을 위해 우리는 / 최후까지 / 정오의 허공을 날아다녔다.
표제시 「정오의 희망곡」(26 ~ 27쪽)의 전문이다. MBC FM 음악프로그램은 역사가 깊었다. 1970년대 시작된 음악방송은 거쳐 간 DJ만 사십 여명이었다. 지금 방송시간대는 12:00 ~ 14:00다. 표제시를 보고 나는 30여 년 전 안산 공장노동자 시절을 떠올렸다. 점심을 부리나케 먹고 블록 모서리마다 자리 잡은 컨테이너 매점으로 달려갔다. 열악한 작업장의 매캐한 먼지로 칼칼한 목구멍을 글라스 소주로 지졌다. 안주는 삶은 달걀이었다. 그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음악 방송이 「정오의 희망곡」이었다. “한국 시의 모더니티의 한 극한에서 서정성 자체를 낯설게 하는 첨예한 시적 감각을 만나려 한다면, 이장욱을 읽는 것은 강렬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문학평론가의 말이다. 시편들은 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 과거와 현재가 종횡무진 뒤얽혀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분명 일상에서 쓰이는 시어(詩語)인데 한 편 한 편의 시가 낯설었다. 평론가의 충고(?)가 맞다면 그동안 나의 시 읽기는 서정시에서 자명하고 따뜻한 전언을 듣는 도정(道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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