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아나키스트

대빈창 2017. 3. 23. 05:51

 

 

책이름 : 아나키스트

지은이 : 장석원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속물의 시대에 쓰는 자학과 투덜거림」이라는 글에서 아픔을 유난히 예민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화려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엄살’이라 불렀다. 평자는 시인의 계보를 그렸는데, 5·16 쿠데타 이후 김수영의 시적 변모와 황지우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그리고 최근 시집으로 장석원의 『아나키스트』를 들었다. 포충망에 걸려 든 시인의 첫 시집을 손에 넣었다.

시집은 2002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등단작 「낙하하는 것의 이름을 안들 睡蓮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를 비롯해, 3부에 나뉘어 48편과 권혁웅(시인, 문학평론가)의 해설 「시와 다성성(多聲性)」이 실렸다. 시편을 읽어나가다 눈에 걸린 팝송과 대중가요와 가수들이다.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I'll be crying) / 밴드 캐멀 / 라이크 어 버진 헤이, 마돈나 / 폴 매카트니와 스티비 원더 에보니 앤 아이보리 / 게리 무어 / 인순이 “정답게 지저귀는 저 새들 내 맘 알까.” /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 c'est la vie / 은방울 자매 / 낙랑 ⅩⅧ세 / 그렇게 많은 별들 중에 그 별 하나 나를 쳐다볼 때, / 모비 딕 / 께쎄라 쎄라 / 金秋子 / 조용필의 노래.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며 잡았었는데 /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 사랑밖에 난 몰라 / 헬로와 헬로와 꽃들이, 헬로와 헬로와 우리들에게, /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 얄미운 사람 / 讚 讚 讚 / 한 잔 또 한 잔, 취하기는 마찬가진데

 

그렇다. 시인은 유달리 음악을 좋아했다. 에세이 『우리 결코, 음악이 되자』에 시인에게 영양을 준 그룹 아바(Abba), 비틀즈(Beatles), 듀란듀란(Duran Duran), 컬처클럽(Culture Club),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등이 등장했다. 80년대 초 나는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시편들은 고정된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었고 불협화음만 가득했다. 시인이 화자로 나선 독백의 발성에 익숙한 나에게 난해하기 그지없는 시집이었다. 시인도 자신의 독자적인 발성법을 염두에 두고 표제를 붙였을 것이다. 마지막은 「젊고, 어리석고, 가난했던」(111 ~ 114쪽)의 부분이다.

 

크레모아 들고 적진에 뛰어드는 용기. / 우리의 만남. 부자연스런 체위. 시와 혁명. / 술과 사상. 노동자와 시인. / 우리와 그들의 사랑은 소도미야. / 소돔 성이 소도미 때문에 망하지는 않았어. / 사랑의 힘 때문이야. 서풍이 분다.

(······)

지하철공사 노동자들. 술을 마시고 있어. / 파업 철도. 강철의 힘이란 옛날의 추억이라구. / 엣날의 금잔디. 동산에. 아름다운 여인 메텔. /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 역에 멈춰서면 / 차량 기지엔 햇빛이 가득했네. / 투쟁하는 노동자의 눈동자. / 그런 시대. 그런 아득한 날들 앞에 / 항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