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나의 국토 나의 산하

대빈창 2008. 10. 14. 12:59

 

 

책이름 : 나의 국토 나의 산하 1, 2, 3

지은이 : 박태순

찍은이 : 황헌만

펴낸곳 : 한길사

 

소설가 박태순은 건재했다. 박태순의 글을 잡아본 지가 언제였던가. 그 기억은 20여년을 훌쩍 건너뛴다. 작가는 60년대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문단에 데뷔한 4·19세대다. 나는 대학시절 그의 중·단편을 애독했다. '무너진 극장'과 '정든 땅 언덕 위'가 기억에 남는다. 탈농으로 도시 변두리에 정착한 빈민들의 가난, 무지, 광태를 형상화한 민중문학이었다. 하지만 나의 뇌리에 '박태순'이란 이름 석자를 각인시킨 책은 무엇보다 '국토와 민중'이었다. 엄혹했던 80년대 초반부터 부조리한 현실에 눈을 떠가던 나의 시선에 그의 책은 한마디로 충격 자체였다. 국토문학, 국토인문학의 새 장르를 개척,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새로운 기행문학으로서 나는 당연히 '75년에 출간된 지은이의 '작가기행'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책 출간을 계기로 한길역사강좌의 연장으로 한길역사기행이 이루어졌는데, 나는 그 답사모임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 모임은 '머리로 인식하는 역사가 아닌, 민족사의 현장에서 가슴으로 호흡하고 온몸으로 체험하는 역사인식' 운동이었다. 나는 그때 월간지인 '한길문화'를 통한 간접체험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25년이 흐른 지금, 국토와 민중을 새롭게 보는 시야를 튀어준 작가 박태순이 재등장했다. 그것도 소설이 아닌, 국토기행문을 들고서. 다름아닌 '나의 국토 나의 산하' 시리즈 3권이다.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인터넷 서적 시장바구니에 들어있던 다른 책들을 뒤로 물렸다. 투명비닐에 포장된 꽤나 묵직한 책들을 손에 넣으니 마음마저 뿌듯했다. 더구나 동행한 사진작가는 우리의 옛 문화와 풍속을 사진으로 기록하는데 있어 발군의 영상미학을 자랑하는 황헌만이었다. 나의 책장에는 찍은이가 고단한 발품을 판 '장승', '조선땅 마을지킴이'가 꽂혀있다. 책의 표지사진을 일별해도 대표적인 우리 산하가 포착된다. 1권의 표지 사진은 왕시리봉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 연봉과 섬진강 전경이다. '나의 국토 나의 산하' 시리즈는 권당 500여쪽으로 꽤나 부피가 두텁다.

저자는 왜 국토기행 시리즈를 펴내면서 일련번호를 메기고 부제를 다는 형식을 버린 것일까 의문이 든다. 예를 들면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1, 2, 3'는 표제가 되고, '시대를 담은 그릇', '앎과 삶의 공간', '이 땅에 새겨진 정신'이 부제다. 그런데 '나의 국토 나의 산하'는 3권 모두 표제는 같은데, 오히려 부제에 일련번호가 매겨졌다. 즉 '나의 국토인문지리지 1', '시인의 마음으로 2', '인간의 길 시대의 풍경 3'가 된다. 아마! 저자는 39개의 꼭지로 구성된 국토기행을 연재하면서 각 권마다 풍경과 역사를 대하는 인식에 무게중심을 둔 것 같다. 2권의 표지 사진은 경남 산청 단성의 남사마을 돌담길이다. 10여년전 나는 배낭을 둘러메고 근 이레동안 지리산자락을 싸돌아다녔다. 나는 그때 남사마을을 들르지 못하고 바로 남명선생 유적지로 향했었다.

1권은 거대담론의 서사국토를, 2권은 국토에 대한 미시담론이라면, 3권은 국토의 종단, 횡단 두 코스의 기행문이라고 할수있다. 종단기행은 동해안 일대를 누비고, 횡단기행은 충청 내륙에서 내포평야를 거쳐 서해안 바닷가에 이르는 국토순례 여정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땅을 화려 금수강산이라며 자긍심을 가졌다. 하지만 옛말이 된지가 이미 오래다. 경제성장 위주의 정책은 개발지상주의를 낳아 공장, 도로, 산업 시설과 투기 목적으로 전락한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난립하여 국토는 망신창이다. 전통이고 민속이고 나발이고 소비문화에 중독된 떼거리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로 유흥오락단지가 눈에 뜨이는 곳마다 지천이다. 장기적인 전망은 고사하고 '빨리빨리' 밀어붙인 국책으로 이 땅은 멍이 들다 못해 아예 시커멓게 죽어간다. 그러나 늦더라도 시작해야만 한다. 환경파괴와 소중한 문화유산의 훼손이 목불인견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생태가 살아 숨쉬는 자연에 우리의 삶을 의탁해야 한다. 우리가 숨쉬고 우리 후손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을 이 국토 산하를 새로운 눈으로 조망하고 인식해야만 한다. 일찍이 이런 인식에 눈을 떠 홀연히 국토 산하를 떠돈 작가가 박태순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찾지 않는 한 국토는 없고 깨닫지 않으면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길을 찾는다. 내가 길을 새롭게 하는가. 길이 나를 새롭게 하는가.'라는 말로 3권의 서두를 장식했다. 3권의 표지 사진은 1980년대 경기 안산 오이도 가는 길이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이 길과 주위 풍광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올바른 영혼을 가진 이라면 한숨이 절로 나올 것이다. 시멘트 덩어리를 보고 개발이며 발전이라고 설레발을 치는 놈들과 얼빠진 자들을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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