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시장권력과 인문정신

대빈창 2008. 10. 21. 19:28

 

 

책이름 : 시장권력과 인문정신

지은이 : 이명원

펴낸곳 : 로크미디어

 

나의 책장에는 문학평론가 이명원의 저작물 3권이 꽂혀있다. 에세이비평 '해독', 2000년 전후 한국문학 논쟁의 풍경을 그린 '파문', 문학평론집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이다. 저자가 나의 인식 속으로 뚜렷하게 각인된데는 무엇보다 문학비평계의 태두(泰斗)라 불리는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폭로(?)하여 문단에 일대 '사제 카르텔 논쟁'을 불러 일으킨 사건 때문이었다. 몇년 전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에 대한 찬양이 일간지 문화란을 도배질했다. '저서 100권 발간'의 축하글이 각 신문지면을 뒤덮었다. 27년만에 이룩한 전무후무한 한국문단의 미증유의 업적이었다. 호사다마랄까. 10년전 한 이름없는 대학원생이 논문에 한국비평계의 상징인 김윤식 교수의 표절 문제를 언급했다. 그 학생은 학부시절부터 한가지 소망을 갖고 있었다. 문학평론가를 꿈꾸면서 한국문단의 태두 김윤식 교수의 출간된 저작물을 모두 읽겠다는 다짐과 그것의 자기실천이었다. 매우 상상력이 풍부하고 노력하는 학자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윤식 교수의 '한국 근대소설사 연구'가 너무 낯익었다. 당시 막 번역된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읽고 나서였다. 텍스트 분석의 방식이나 논리전개가 너무 흡사했다. '지식인에게 표절은 관용의 대상이 아니다.' 표절은 일종의 사기인 것이다. 당연히 논문 발표회장에서 심사위원들은 당황했다. 이후 사건은 보지 않고도 뻔하지 않은가. '사제 카르텔', '문학권력', '서울대공화국', '문단의 패거리주의' 등 이명원은 재학중인 대학원에 자퇴를 낼 수밖에 없었다.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해도 '왕따'를 당하는 모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로 이 논문이 '김윤식 비평에 나타난 현해탄 콤플렉스 비판'으로 '타는 혀'에 실려있다. 체 게바라가 생각난다.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

이명원의 외모는 여리다. 하지만 내면은 강단지다. 이 사건은 한국의 문단 패거리주의가 문학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야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윤식 교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서울대 제자들이 충성스럽게 온갖 설레발을 처, 저자는 문단의 사생아로 전락했다. 저자가 정의를 추구하는 진실된 삶에 대한 또 하나의 에피소드. 얼마전 저자는 서울디지털대학에서 해직됐다. 학교의 내부 비리를 진보언론에 기고하고 인터뷰로 고발했다는 이유였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이 땅의 진짜 몰골이다. 그래서 '천민자본주의'라고 하지 않던가. '문화권력'을 쥔 자들에게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칭호를 듣는 저자의 평생 소망은 '글쓰기'에 전념하는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임무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학계의 권위주의와 패거리주의에서 그를 지켜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온갖 모순이 중첩된 못난 이 땅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사랑으로, 억압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공간이 바로 그의 비평의 장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절대자본주의'로 명명한다. 그것은 '노동유연성'이 '해고의 자유'라는 다른 표현이듯이, 명명-프레임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신자유주의'라면 무슨 '구자유주의'의 모순을 지양한 이념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렇다. 핍박, 억압, 수탈 당하는 약자들은 이런 말 장난에 놀아 나서는 안된다. 그러기에 이 책은 절대자본주의 체제가 인문정신을 억압하는 위기상황을 파악하고 진단하는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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