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을 마치고 현관문을 밀쳤습니다. 어머니와 뒷집 형수가 마루턱에서 완두콩을 까고 계셨습니다. 형수가 뒷춤에서 간난 고양이를 꺼내 내밀었습니다. 마루가 미끄러운지 새끼는 자꾸 비틀거렸습니다. 이미지의 간난 고양이는 노순이 새끼입니다. 노순이는 달포 전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몸이 허약한 어미 때문인지 두 마리의 새끼는 눈도 못 뜬 채 죽었습니다. 새끼는 아빠 재순이를 닮았습니다. 검돌이도 한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뒷집 고양이는 이제 다섯 마리가 되었습니다.
노순이는 뒷집 보일러실 종이박스에 새끼를 낳았습니다. 뒷집 형수는 재순이가 해꼬지를 할까, 노순이가 밖에 나오면 재빨리 미닫이를 닫았습니다. 우리집에 놀러 온 노순이가 어머니께 조릅니다. 어머니는 보행보조기를 끌고 나섭니다. 노순이가 따라 갑니다. 어머니가 미닫이를 열면 노순이는 광으로 들어가 새끼와 상봉합니다. 농사일로 바쁜 뒷집 형수가 논이나 밭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을 녀석은 알고 있습니다. 먹을 것을 찾아 우리집에 놀러 온 노순이가 시간을 허투 소비할 수 없습니다. 노순이는 혼자 힘으로 미닫이를 열 수 없었습니다. 녀석은 새끼가 걱정되면 어머니의 정강이와 발등에 얼굴을 문지릅니다. 노순이가 어머니를 졸졸 쫒아 다니면 새끼가 못 미덥다는 뜻입니다.
이름도 짓지 못한 간난고양이가 느리 선창 매표소집에 입양되었습니다. 할머니 시루의 집입니다. 얼룩무늬가 시루떡을 닮은 고양이는 병을 앓다 달포 전 죽음을 맞았습니다. 시루는 노순이와 재순이의 어미입니다. 노순이의 목소리는 몸피처럼 가냘픕니다. 녀석은 혼자 아궁이를 쑤시고 다니는지 항상 잔등에 검댕이 묻어 있습니다. 노순이는 약아서 먹을거리를 챙길 욕심에 혼자 다닙니다. 재순이는 먹을거리를 달라고 악을 써댑니다. 검돌이는 수줍음이 많아 멀리 떨어져 손에 무엇이 들려있나 눈치만 살핍니다. 세 놈은 하루 두 끼를 제 집에서 먹고 나머지 시간은 우리집에서 소일합니다.
노순이가 단단히 삐졌습니다. 새끼를 잃고 제 집에 갈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형수가 고깃국을 끊여 입에 대도 본척만척 웬 종일 어머니 뒤만 쫒아 다닙니다. 어머니가 부엌 샛문을 열고 던져주는 감자와 김치쪼가리가 고작입니다. 녀석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주인이 챙겨주는 맛난 먹을거리에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정을 끊을 기세입니다. 노순이가 어머니의 깔방석에 앉아 밤을 보냅니다. 뭍에 나간 김에 동물병원에 들렀습니다. 수의사는 먹질 않으니 약은 소용없고 주사를 놔주라고 합니다. 피골이 상접한 노순이를 보며 어머니가 혀를 차셨습니다.
“에구, 불쌍한 것.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새끼 잃은 슬픔은 사람과 똑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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