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5

대빈창 2017. 7. 17. 07:00

 

 

생수통, 뜸, 스티로폼 부력, 캔 맥주, 맥주 페트병, 소주병, 막걸리 통, 부탄가스통, 스포츠음료 병, 캔 커피, 지게차용 깔판, 석유 들통, 간장 말통, 콜라병, 폐타이어, 튜브, 탄산음료 병, 운동화, 슬리퍼, 옷, 나무가구, 파레 더미······.

 

백사장을 덮은 파레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말라 갑니다. 멀리 솔숲을 빠져나와 제방으로 꺾어드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먼동이 터오기 전 골안개가 빠른 속도로 밀려들었습니다. 안개 군단은 분지도를 눈 깜짝할 사이에 포위했습니다. 이 시각. 4년 째 제가 터 잡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사람은 그이 뿐입니다. 제게 토진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 사람입니다. 폭우나 폭설로 길이 막히지 않는 이상 그이는 아침저녁으로 여지없이 나타납니다. 저와 눈을 맞추고 입가에 엷은 웃음을 짓고 오던 길을 뒤돌아서 갑니다.

항상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던 사람이 오늘따라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그이의 눈길은 제방 밑 모래사장에 쌓인 쓰레기에 고정되었습니다.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이는 자칭 얼치기생태주의자였습니다. 취로사업에 나선 할머니들이 가끔 해안 쓰레기를 청소합니다. 물결 따라 하루 두 번 밀려드는 쓰레기를 감당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인 분지도 해안은 쓰레기 천지입니다.

인간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가공할 위협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핸더슨 섬은 남태평양 가운데 떠있는 뉴질랜드, 칠레와 5000㎞ 이상 떨어진 무인도입니다. 유네스코는 1988년 지구상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청정지역으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했습니다. 인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던 이곳은 2015년 17.7t에 이르는 3770만점의 쓰레기로 덮였습니다. '남태평양의 소용돌이'로 바다 쓰레기가 이곳에 모였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가장 큰 인공물은 해양 환경운동가 찰스 무어가 1997년 태평양 횡단 요트 대회 중 발견한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reat Pacific Garbage Patch)입니다. 2021년이 되면 전 세계에서 한 해 판매되는 플라스틱 병이 5800억 개가 됩니다. 매초 당 약 2만개를 소비하는 수치입니다.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병이 1300만t에 이르렀습니다. 햇볕에 의해 잘게 잘라진 바다 플라스틱을 새와 물고기가 삼킵니다. 2050년이면 물고기보다 페트병이 더 많아진다고 합니다.

사람이 생선을 먹으면 최대 연 1만1000조각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소름 끼치는 부메랑 효과입니다. 지구온난화가 몰고 온 이상기후에 대한 걱정보다 인류는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나는 길이 급선무입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만물의 영장은 웃기는 소리입니다. 자신의 종족을 비롯한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주범이 사람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인류 멸망이라는 예정된 수순의 길로 이미 들어섰습니다. 역진화에 성공하여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토진이가 얼치기생태주의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무심코 버린 일회용 치솔과 면도기가 수십 년 동안 썩지 않고 바다를 떠돌아다닙니다. 그 쓰레기를 200종 이상의 바다생물과 바다새의 55%가 먹이인 줄 알고 섭취합니다. 생태계 최상위인 사람은 물고기와 새의 포식자입니다.”